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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송이 흰 글자들 쏟아져 내린다벌판의 갱지에 소복하게 내려앉아반짝반짝 서정을 빛내고 있다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사이일찍 찾아온 개밥바라기별더듬더듬 시를 읽는다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1.03.1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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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앉아 있는그녀의 의자에서는 갓난아이 냄새가 난다옹알옹알하는 소리가 들린다명치끝까지 치민 복압에 뒷물질 어렵고잘 체한다고 가슴 도닥이는 그녀야근 때문에 때때로 퇴근버스 놓친다반찬이라곤 무장아찌가 전부라는그녀에게 식단표 보여주며새 우주 생성하는 대 우주 위해서라며 너스레 떨면격일제로 근무하는 남편 때문에외로움 탈 때가 많고이슬이 비치고 통증 오면혼자 병원 가야 한다며 선잠에 취한단다햇살 속으로 생산시킬 양수가 부족해물 많이 마셔야 한다며 꿀꺽꿀꺽 소리를 낸다까르륵까르륵 하다가도 옹알거리는딸을 낳고 싶다는 그녀배냇저고리 기저귀 모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1.03.03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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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학교풀들이 일어나 보건체조로 아침을 연다행글라이더가 되어 하늘을 나는 제비들울타리 아래 풀밭 돌며 훈장질에 바쁜 염소구구단 외우는 비둘기들어둠이 국수처럼 풀어지자달과 별들 연못에 내려와 시 쓴다풀벌레들 합창하고버짐나무 이파리들 시끌벅적 와르르 손뼉 쳐대고풍뎅이들 반딧불이 야간자율학습에열중이다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1.02.2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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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난 아홉 구멍에서는눈물 눈곱 귀지 콧물 코딱지 침 가래오줌똥이 나오고머리통 속에는 뇌수몸통 속에는 점액 진물 지방 피 관절액쓸개즙 기름 가득 차 있고뼈와 힘줄로 감싼 살갗에서는땀과 때를 배설한다얼빠진 정신에서 입성 허름한 군상들 향해껍죽대고 뻐기고 깔보는 자체도 오물이다업장 짊어지고 쭈글쭈글 늙어온소양강 쏘가리처럼 쏘다니며방귀 하품 트림 토해내고 있는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안원찬
2021.02.1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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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끊고 지내던 여인, 어느 날 불쑥 찾아와살가운 측근 되어달라며 끈질기게 졸라댄다바깥일은 고사하고 밥맛조차 앗아가고저만 챙겨달라 보채고 앙탈 부린다잊을 만하면 찾아와 생활 흩트려 놓는그녀의 강짜 날이 갈수록 드세어진다콧물이 내를 이루고 그렁그렁 가래 끓고눈알 튀어나올 듯 토해내는 기침삼백육십 개 뼈마디가 아근바근일백삼십억 개 신경세포 육백오십 개 근육동침으로 찔러대듯 콕콕 쑤셔댄다그녀 앞에 간절한 심정으로 무릎 꿇고생업까지 중단해서야 되겠냐고아무리 사정해도 콧방귀도 안 뀌던 그녀한 달포 내 생의 멱살 잡고 마구 흔들어대더니어느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1.02.1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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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둥과 번개의 스틱으로땅바닥 신나게 난타하는 빗줄기의 드럼 소리매일 밤 시원하게 꿈을 적신다하지만 눈뜨면 하늘은 요지부동달도 별도 마른 이야기꽃만 재잘재잘 피워댄다주물공장 용광로처럼 온 세상 지글지글 끓는다땅속 어미 거북새끼들 죄다 밖으로 내보냈는가논배미마다 다닥다닥 엎드려 있다2여우비라도 줄금줄금 내리면 좋겠다메마른 지갑에도 내리면 좋겠다메마른 가슴에도 내리면 좋겠다메마른 블로그에도 내리면 좋겠다치솟은 채솟값도 내리면 좋겠다개미들 이사하고 청개구리들 끌끌 끌끌 울어비구름 몰고 오면 좋겠다오랫동안 침묵했던 비가락국수처럼 내리 쏟아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1.02.0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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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하늘에 별들이 또렷하고 앞산이 성큼 다가오는느낌이다 무덤이 훤하게 빛나고,베란다 창고에서 제상과 제기가 들어오고장롱 위에서 잠자던 병풍이 내려온다분주하게 준비한 제물이 진설되고 현관문 열어놓자지게질 쟁기질 호미질 낫질밖에 몰랐던 조상하얀 두루마기 입고 들어온다아파트 거실이 생소한지 주저주저하다가 마침내자리 잡고 앉으며 아이고시골집 갔다가 이사 온 집 찾느라 애먹었단다강신하자 제상 머리에 앉는다참신하고 축문 고하고 첨작하는 동안술로 목축이고 식사한다젓가락 내려놓는 소리에 숭냉 올리고지방 걷어 향로에 불사르자 현관문이 여닫힌다제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1.01.2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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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내 몸속에 살고 있는 두더지퇴화한 눈 때문에 후각 청각이 더욱 예민해진 두더지는살아있는 생명체만 먹고 산다고 한다먹이는 머리부터 먹거나반쯤 죽여 도망가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두드러기는 허약체질을 좋아한다날씨가 흐린 날이면어김없이 몸속에 두렁을 파며 쏘다니는 두더지두더지가 내 생활을 관장한다요즘 정국이 수상하다곳곳을 들쑤셔대고뒤를 캐 동향을 보고하는 둥증상은 분분한데 실체가 없다우리 시대 두더지들은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여기저기 가렵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1.01.2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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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손바닥 비벼대며 여기저기 기웃대는 사람들젊은것들 바라보다마주치면 딴청 부리는 사람들해종일 사람 쬐는 사람들밥때 되면 줄이 되는 사람들아 참, 안경 끼고 비쩍 마른,그 사람 요즘 안 보이네어허 마나님 따라 먼 길 간 모양이구먼겨울 넘겨야 얘들 덜 고생할 텐데……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오주원 기자
2021.01.1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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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늦은 저녁툇마루에 앉아 샘물로 녹차를 달인다반쯤 달이자 비로소 향기 들리고다로에서 솔바람 소리 들린다부드럽게 타오르는 불빛 둘레의 어둠을 비춘다이윽고 찻잔에 차를 따른다녹황색 돌고 맑고 은은한 향기담백하고 청초한 맛그토록 오묘한 빛과 향 어디서 오는 걸까별빛 바람 이슬 안개 구름 눈 비 햇볕이런 정기 한데 엉켜 이루어졌기 때문일까마시고 나면 물이 흐르고꽃이 피는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오주원 기자
2021.01.06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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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는 독거다창틀에는 먼지가 덕지덕지 쌓여 있고천정에는 알록달록 지도가 그려져 있고벽 구석구석 갈라진 틈새마다시커먼 곰팡이가 피어 있다댓돌에는 시퍼런 꽃이 피어 있고마당에는 잡초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지붕에는 버섯들이 솟아 있고철 대문에는 붉은 꽃물이 흘러내리고 있다독거는 독거다이 모두는 늙음의 꽃이다어떤 모양으로 피든 어떤 색깔로 피든말없이 피었다가말없이 가야 하는 꽃이다저승꽃이다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0.12.3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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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 위에 흩어져 있는 파편들손가락으로 툭툭 치면톡톡 튀어나와 종알종알 모니터를 점령한다제멋대로 엉켜 있는 놈들에게 구령 부친다‘백 미터 전방 축구 골대 돌고 와 일렬종대로 섯’열 명씩 끊어 끝까지 뺑뺑이 돌리는 선착순원고지 칸칸이 감옥이다수없이 감옥을 들락거리는 파편들원고지 속에서 머리 짓찧으며오랜 불면의 밤을 밝히고직병렬로 짜깁기된 문장들줄지어 나온다파편들이여외롭다 하지 말고육경六境과 천년만년 동고동락하라시도 때도 없이 짜깁기 당하며 살라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0.12.2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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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 더듬는 빛이 술병 조각에 베인 채자욱한 안개 짊어지고절룩거리며 되돌아가는 것은현세의 마지막 연출이다각자의 시나리오에 의해스스로 연출하며 닿는 곳곳마다전부가 무대이어도배우인지연출인지관객인지 모르고 사는 삶은 허송세월이다차라리 벙어리같이소경같이 귀머거리같이 살면검은 안개 이고 가던하얀 안개 이고 가던가도 가도 그 자리이르고 이르러도 그 자리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 자리다그대로 보라무상무념無想無念 무념무상無念無償으로 살라마른하늘 불러 비 내리게 하는날마다 좋은 날이다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0.12.1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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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손자 즐겨 먹는 계란프라이 할 때마다프라이팬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가내게는 꼭 살 타는 소리로만 들린다유정란은 아직 생명이 살아있는 계란그러니까 불심 깊은 나는친손자의 입맛을 위해서슴없이 살생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아, 새삼 생각하니삶이란 얼마나 기막힌 농담인 것인가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0.12.09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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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뚜막 온기 불쑥 그리워아궁이에 참나무 장작 한 아름 지폈다굴뚝에서 연기 피어오르고 집 안에 온기 들자긴 잠에 빠져 있던 오두막 부스스 깨어난다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0.12.02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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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 살다 보면창호 들이받는 곤충, 짐승, 벌, 새소리바람, 낙엽 부서지는 소리이 소리 저 소리 낱낱이 잡힌다네바람과 구름 속으로 사라진 그 소리시냇물과 어울려 깊어가는 요즘감자꽃과 싸리꽃이 한창이네연한 보라색에 노란 꽃술 머금고올망졸망 앉아 있는 꽃도 귀엽지만은은한 꽃향기 여느 꽃에 못지않다는 것한참 눈 씻고 그 향에 숨길 맑히고싸리꽃을 유심히 살펴보게홍자색 띠어 좀 쓸쓸하게 보이지만한껏 붉게 타는 가을 입김 배어 있네싸리비로 마당 쓸 때마다그 가지에 달려 있을 꽃을 생각해보게싸리꽃 향기가 물씬물씬 풍길 걸세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0.11.25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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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춘(早春)을 꿈꾸는 그녀몸 비록 늙었어도 꽃은 젊어벌 나비 붐비고열매는 달아단것에 주린 입들 붐빈다그녀의 몸속에는 발전소가 들어 있나 보다육덕 흐드러진 가지에 환한 알전구 켜놓고마당 안팎을 환히 비추고 있다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0.11.1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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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기 없는 풀의 새싹 상추 콩잎 고구마줄기 주고 가끔 특식으로 소나무 가지 쳐다 준다 겨울엔 볏짚 고춧대 시래기 콩깍지 쌀겨 챙겨주며 친근해진 뿔 없고 수염 없는 두 살짜리 얌생이가 새끼 두 마리 낳고 젖을 생산한다 저녁나절이면 젖꼭지에 찌그러진 주전자 들이대고 엄지손가락부터 새끼손가락 순으로 차례차례 오므렸다 폈다 하며 젖 짤 때마다 네굽질 한 번 한 적 없는 순덕이 등굣길 개울가 풀밭에 묶어놓으면 사라질 때까지 고개 돌릴 줄 모르는 순덕이 성깔머리는 급격해도 젖 먹이기에 길든 아이가 울면 알아듣고 찾아와 젖 물리게 하던 순덕이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0.11.1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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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여 년 전 옆집 친구 말순이 엉덩이는종가댁 김장배추 절이던 고무 다라이만 했고젖무덤은 돌담 위에 얹혀 있는 누런 호박보다 크고밥이다 빨래다 농사일이다 못하는 게 없어부잣집 맏며느릿감이라고산 넘어 읍내까지 소문이 자자하던,사춘기 갓 지난 놈들까지얼굴 파묻어보고 싶다며 입씨름하고연애질했다는 소문만 나면 혼삿길 막힌다고장 구경 한번 못하던,십이 인치 나팔바지에 쫄티 유행이던 시절젖싸개 속에 목화솜 빵빵하게 넣고 뽐내며신작로 오르내리던 친구들 먼발치서 구경만 하던,불알 두 쪽밖에 없는 노총각한테 시집가서죽도록 화전 일궈 농사일만 한다는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안원찬
2020.11.04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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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풀벌레 우는 소리 갈수록 여물어 간다 성급한 오동잎 뚝뚝 지는 소리에 사람 발자국 소리인가 싶어 귀를 세운다 칼날 같은 햇살에 밥 짓던 후박나무도 도깨비방망이처럼 생긴 열매에서 비타민제 알 같은 씨앗 울컥울컥 토해낸다 산의 옷 빛 바래지고 별빛 또렷해진다 앉은 자리에 그대로 꽂혀 있다는 것은 따분하다 내 안에서도 겨울 채비해야 하겠다 정년퇴직 후 텃밭에 가꾼 배추 무 알타리로 김장하고 詩를 써 봄을 불러야 하겠다 누렇게 익어가는 들녘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 풍요로워진다 하지만, 아직도 재난의 응달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웃 안타깝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안원찬
2020.10.28 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