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났을 때 살갗에 돋던 소름 날이 가면 잦아들 줄 알았다 병실마다 몸살 앓는 소리 요란하다 밤마다 갈고 나온 시퍼런 목낫 온종일 휘두르다 못해 늦은 밤까지 해대는 전화질 고목의 가지 팍팍 내려친다 검은 피 역류하다 뽑히기도 한다

육 개월 이상 치료 요한다는 진단서 받는 순간 아내부터 생각날 줄 알았는데 육 개월 동안 징그럽게 눈깔 치켜뜨고 쪼아대며 노예보다 더 지독하게 지지고 볶던 만고 잡놈 직장 상사부터 생각난 것은 웬일일까

야! 시벌로마施罰勞馬, 사람이 싫어지고 머리 터진다 잡귀에 홀려 잠 못 잔다 밤 아홉 시에 챙겨 먹는 약발에 다른 세상에서 살다 알람 소리에 깨어난 아침, 엉클어진 머리통 고쳐준다는 약사여래 짊어지고 광교산 매봉약수터에 도착한다

거꾸리에 발목 걸고 눕는다 하늘 뚫는 떡갈나무 우듬지에 머리통 매달아 놓는다 앞뒤 없이 헐렁한 왜바지처럼 살고 싶다 머릿속에 진 친 ‘중등도의 우울성 에피소드’*와 쌈박질한다 야! 시벌로마, 제발 날 좀 내버려둬라

* 우울성 에피소드(Depressive episode)는 증상의 정도에 따라 경도, 중등도, 중증으로 나뉘며, 중등도는 보통의 생활을 계속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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