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탄(町畽) 조원섭의 향토문화 보고서
지역학 연구 ‘이야기로 보는 홍천’⑦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홍천은 강원도의 불교문화의 중심 지역이었는가?

홍천을 알면 알수록 문화에 대하여 문외한인 필자에게도 새로운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다. 그리 크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지방소도시로 고대 문헌 및 지도에 보면 사찰이 많이 언급되는데 대표적으로 공작산에는 89칸의 건물과 옥수암, 쌍계암, 운수암을 부속암자로 두었던 수타사가 있고, 금학산 자락에는 홍천 용(龍)씨 시조이면서 고려말 1241년에 문하시중을 지내고 팔만대장경 제작에 감독자로 참가하였던 용득의가 창건한 용수사 (대동여지도에는 수용사로 표기)가 있었으며, 기암괴석의 8개 봉우리로 이루어진 팔봉산에는 장락사, 성방사가 있었으며, 홍천읍의 석화산에는 관음사가, 이외에도 은적암, 쌍계암 등이 표시되어 있었다.

홍천의 풍부한 불교문화재

불교문화재로는 홍천읍 석화산 관음사와 관련이 있을 듯한 희망리 당간지주 (보물 제80호), 희망리 삼층석탑(보물 제79호), 진리석불(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4호)이 있고, 수타사에는 보물2점(동종, 월인석보), 강원도 문화재자료 2점(삼층석탑, 홍우당 부도), 강원도 유형문화재 6점(사천왕상, 영산회상도, 지장시왕도, 대적광전, 흥회루, 목조관음 보살좌상)이 있으며, 우적산 일월사(수타사 전신)나 수타사와 관련이 있을 듯한 두촌면 괘석리 탑동에 있던 4사자 3층석탑(보물 제540호), 수타동의 3층석탑(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2호), 장남리의 3층석탑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3호)가 있고, 홍천의 대표적인 내촌면 물걸리사지 (강원도 기념물 제47호)에는 보물 5점 (석조여래좌상, 비로자나석불좌상, 석조대좌 및 광배, 3층석탑)이 있는 것이 그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문화재청의 한국의 사지 현황조사 보고서(韓國의 寺址 / 2013년 하권)에는 홍천군내의 폐사지 10개소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동안 용수사와 삼층석탑을 비롯한 문화재와 사지로 6개소를 소개하였고 삼층석탑이 분실된 양덕원리사지를 제외하고, 지난 신봉리사지 소개에 이어 쌍계사지, 장전평리사지에 대하여 소개 하고자 한다.

내촌면 서곡리 쌍계사지(雙溪寺址)

홍천군 내촌면 서곡리에는 쌍계사라는 조그마한 절이 위치하고 있는데 그 절 입구에는 1기의 승탑비와 승탑 7기가 있어 꽤 오래된 사찰로 추정되나 지금의 현재의 쌍계사 위치가 아닌 북쪽으로 300여 미터 백우산 자락에 쌍계사지(雙溪寺址)가 있다고 한다.

이 사찰은 수타사의 부속 암자였던 쌍계암과 동일한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강원도 문화재 연구소의 쌍계사 암각기문 관련 내용에 의하면 1731년(조선 영조 7년)에 건물이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절 입구의 쌍봉당대선사 탑비에 새겨진 승탑의 건립연대를 보면 조선후기에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쌍계사라는 명칭은 1871년도의 관동읍지와 1872년의 홍천지도에서 확인되며 조선보물고적 조사자료에서는 사지(寺址)로 칭하고 있어 20세기 초에 폐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1702년 서곡리에서 태어나 수타동 수타사로 입문하였다는 서곡대사(수타사 입구에 부도비가 있음)도 어렸을 때 마을과 인접한 쌍계사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2005년 확인되었던 이곳의 암각기문도, 승탑비와 비신석, 비좌, 맷돌과 치석재도 2007년 이후에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하니 더 이상 분실되기 전에 관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안타까울 뿐이다.

‘홍천읍 장전평리사지(長田坪里寺址)’

홍천읍 장전평리에도 절골이라는 지명이 있고 이 곳에는 실상사라는 조그마한 사찰이 있는데 그 절 입구에는 석탑재 2매가 포개져 있다. 2007년 이전 홍수로 인한 산사태로 드러난 석탑재를 옮겨 보관하고 있으며 실상사 주지스님의 증언에 의하면 2매가 동일한 석탑의 구성품은 아니며 각기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폐사지에는 2기의 석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근 주변의 전원주택 건축지에서는 건축과정에서 고려중기∼조선후기의 어골문, 종선복합문, 중호복합문 등이 다량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이곳을 장전평리사지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처럼 홍천에는 불교문화의 중심지답게 많은 유적이 있으나 아직 발굴 복원되지 못하고 분실되고 있으며 학문적으로도 확인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관련기관과 학자들께서 힘을 모아 발굴복원, 연구, 관리하여 조상들의 흔적을 같이 느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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