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탄(町畽) 조원섭의 향토문화 보고서
지역학 연구 ‘이야기로 보는 홍천’⑧

팔봉산은 홍천군 서면 팔봉리에 위치하며, 봉우리가 여덟 개라서 팔봉산이라고 한다. 8개의 봉우리가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산으로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산행 후 산 밑으로 흐르는 홍천강에 발을 담그면 피로를 말끔히 씻을 수 있는 곳이다. 1980년 5월 29일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으며, 팔봉산을 찾는 이들로 하여금 두 번 놀라게 하는 산으로 알려져 있다. 높이가 낮은 산이지만, 산세가 아름다워 놀라고, 일단 산에 올라보면 암릉이 줄지어 있어 산행이 만만치 않아 두 번 놀란다는 것이다 (용마골, 장수골, 백운대, 음선암, 현선암, 구암, 연가암 등). 팔봉산은 해산굴 등 코스가 재미있고 아기자기하다.

주 능선이 마치 병풍을 펼친 듯 한 산세로 옛 부터 ‘소금강’이라 불리워 질 만큼 아름답다. 또한 주 능선 좌우로 홍천강이 흐르고 있어 정상에 올라서 바라보는 전망이 좋고, 산행 후 물놀이도 겸할 수 있는 곳이다. 최고봉의 높이가 327m의 나즈막한 산이지만 팔봉산은 이름 그대로 여덟 개의 암봉이 연이어 있어 산세가 온통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홍천강이 산기슭을 적시고 휘감아 돌아 그 아름다움은 다른 유명산과 버금가는 경치를 자랑한다.

길에서 바라본 팔봉산

팔봉산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주차장을 지나노라면 왼쪽으로 매점들이 있고, 계속 강을 따라가면 팔봉교에 이른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매표소가 있다. 매표소에서 철다리를 건너 직진을 하면 제1봉 부터 오르는 코스이다. 매표소에서 물 흐르는 방향으로 100m 정도 내려가 제2봉과 제3봉 사이의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당집이 있는 제2봉으로 오를 수도 있다. 처음부터 가파른 길을 20분 정도 오르다 보면 제1봉 등산로 들머리가 나온다.

길은 두 갈래 험한 길과 쉬운 길로 나뉘어 있다. 돌계단에서 약 20분 오르면 왼쪽에 작은 암자가 있고 오른쪽의 바위굴에서 샘이 솟는다. 다시 20분 더 오르면 제2봉과 제3봉 사이의 안부에 이른다.

제2봉 꼭대기에는 작은 당집이 있다. 지역 주민들이 봄, 가을 마다 제를 올리는 삼부인당(三婦人堂)이 있는 곳이다. 삼부인당은 매년 팔봉산 당산제를 올리는 사당이다. 팔봉산 제2봉 정상에 위치한 이 당집은 이씨(李氏), 김씨(金氏), 홍씨(洲氏) 세 부인을 모시는 사당인데 이씨는 시어머니, 김씨는 딸, 홍씨는 며느리이다. 사당에서는 425여 년 전인 조선 선조(1590년대) 때부터 마을 사람들이 오곡과 술, 고기 등을 갹출하여 굿과 제를 올리는 전통적인 부락제인 당산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동국여지승람 기록)

당산제는 예전에 마을의 평온과 풍년을 기원하며, 액운을 예방하기 위해 치러졌는데 근래에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과 등산인들이 산과 강에서 무사 안녕하기를 기원하는 뜻도 겸하여 매년 3월 보름과 9월 보름에 칠성신, 산신(山神), 3부인 신에게 제를 올리는 3마당으로 치러진다. 당산제가 있는 날 주민들은 떡과 고기, 술 등을 나누어 먹는 전통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씨 부인이 가장 인자했고, 김씨 부인도 너그러웠으나 홍씨 부인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당굿을 할 때 이씨 부인이 강신하면 풍년, 김씨 부인이 내리면 대풍, 홍씨 부인이 내리면 흉년이 든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팔봉산 당굿은 크게 3가지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마당은 칠성칠군과 후토신령에게 제사를 드리는 마당, 둘째 마당은 3부인에게 기원을 드리는 마당, 셋째마당은 무당들의 만신굿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예전에 마을 사람들이 하는 말이 팔봉산의 성황님이 내려다보고 계셔서 마을이 잘되고 있다고 하며 옛날에는 팔봉산은 여(女)산이라서 가마채가 그 산을 못 넘어 갔다고 한다. 그곳에 삼부인들이 있어서 가마채가 넘어 가면 발이 붙어서 가마꾼들이 못 지나갔는데 당고개에 물을 정성스레 차려 놓고 절을 하면 그제서야 발이 떨어져서 갈수 있었다고 한다. 팔봉산이 여산이므로 여자들이 샘이 많아서 심통을 부렸다고 전해진다.

팔봉산에는 닭고기, 개고기, 비린 것을 먹고 올라가면 안되고, 뱀을 보고도 못 올라갔으며, 개 잡는 것을 봐도 안 올라갔다고 한다. 올라가면 삼부인이 벌을 주었는데 그 벌은 사람을 굴리는 벌 이었다고 한다. 약 40미터 되는 낭떠러지에서 내려 굴리는데 죽지는 않는다. 위와 같은 경우가 있을 때, 팔봉산 아래 홍천강의 뗏목도 못 지나가게 했다 한다. 또한 여름에는 더워도 옷을 못 벗었다 한다. 왜냐하면 여산이기 때문에 옷을 반드시 입고 지나가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강물 속으로는 산삼 꽃이 비쳤는데, 쳐다보면 안 보이고 물속으로만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산삼 꽃을 본 뗏목은 내려가다가 바위에 부딪히거나 뒤집혀서 사람이 다치기도 하였다 한다. 이유인 즉은, 뗏목으로 내려가려면 사공이 물을 내려다보면서 삿대질을 해야 하는데 물을 보면 산삼 꽃(빨간 열매)이 흐드러지게 보이고 고개 들어 산을 보면 정작 없어서 넋을 잃고 찾다가 그만 바위에 뗏목이 부딪히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또 나쁜 짓을 하면 산신님이 호랑이를 내려 보내 그 산을 넘어오지도 가지도 못하게 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팔봉산 당산제 전경

구전으로 내려오는 삼부인(三婦人)의 전설

옛날 옛적, 팔봉리 마을에 성격이 각기 다른 세 여인이 살고 있었다. 시어머니 이씨 부인, 딸 김씨 부인, 며느리 홍씨 부인이 아옹다옹 싸우면서도 다정하고 행복하게 함께 사는 세 과부 삼부인집이 있었다. 그집 이씨 부인은 성격이 까탈스러웠으나 인자하였고, 김씨 부인은 푼수끼가 많았으나 후덕하였고, 홍씨 부인은 정은 많았으나 다혈질의 소유자였다.

세 과부 삼부인집은 남편들은 다 죽고, 오랫동안 논농사를 짓지 못하고 살아가다 보니, 가세가 점점 기울어 먹고 살기도 점점 어려워졌고,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살아가던 중 언제부터인지 이렇게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서 무엇하랴 하는 상념에 사로 잡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세 과부는 지질이도 남편 복도 없고, 후사도 이을 수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며 죽음을 작심하고 지금의 팔봉산 제2봉에 올라 삼부인은 부둥켜 안은 채, 먼저 저 세상으로 간 무심한 남편들을 향해서 목놓아 울다가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삼일만에 마을 사람들이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앞에서 삼부인은 혼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한참 후 지축을 흔드는 커다란 산울림이 일어나고, 삼부인은 세 차례에 걸쳐 살 떨림의 지랄발광을 치고 난 후에 하늘이 열리듯 주변이 훤해지면서 비로소 농사를 주관하시는 신내림을 받았다. 그 옛날에는 신내림 받은 곳은 영험하고 상서로운 곳으로 여기던 시절인 만큼, 마을 사람들은 추렴을 하여 삼부인이 신내림을 받은 팔봉산 제2봉 꼭대기에 사당을 짓고 당제음식을 마련하여 삼부인으로 하여금 그 사당에서 마을의 평안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당굿을 해마다 대대적으로 올리게 했다.

그랬더니, 해마다 사방 백리내의 농사는 대풍이 들어 살만해졌다. 그런데 어느해 부터인가 풍년이 계속되어 살만해지자, 교만해진 마을 사람들은 삼부인이 올리는 당굿을 하찮게 생각하며 당제음식도 마련해 주지 않고 소홀하게 대했다. 그러자 삼부인은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해 농사는 극심한 흉년이 들었고, 굶어 죽은 자가 부지기수였다. 그제서야 삼부인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 겸손해진 사람들은 당제음식을 마련하고 무당을 불러 그 사당에서 삼부인을 위로하고 부르는 당굿을 대대적으로 올렸다. 그러자 다시 풍년이 들었다. 그래서 홀연히 모습을 감춘 삼부인을 신으로 모시게 되었고 그 사당을 삼부인당이라 이름지어 붙였다.

그때부터 무당을 불러 삼부인당에서 매년 삼부인신을 위로하고 부르는 당제를 올렸는데, 당굿을 할 때 무당에게 시어머니 이씨 부인신이 내리면 풍년이 들었고, 딸 김씨 부인신이 내리면 대풍이 들었고, 며느리 홍씨 부인신이 내리면 흉년이 들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당굿을 할 때마다 내심으로는 김씨 부인신이 내려주기를 빌고 은근히 바랬다.

그리고 지금도 3월과 9월 보름에 당제를 지내고 있고 그 때를 맞춰 많은 사람들이 당제를 보고자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올해도 우리 홍천군에 대풍이 되기를 기원한다.

이야기 출처 : 홍천군지(1989년), 내고장 강원도(중), 우리고장 홍천(1992년), 이야기로 보는 홍천(제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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