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투쟁과 노동, 시민운동으로 점철된 삶
내년 총선 출마 여부..염두에 두고 있다
도농교류 통해 인적 네트워크로 홍천에 도움 줄 터

홍천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는 전성 변호사

전성(全聖, 1958년생 )변호사가 서울에서의 오랜 변호사 생활을 정리하고 지난 16일 고향 홍천에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전 변호사가 걸어온 길은 가히 한국의 비극적 현대사를 겪으며 민주화를 위해 일생을 투쟁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시작해, 80년 광주항쟁 진상규명 운동 등으로 2차례 감옥에 들어갔고 사회로 나와서는 노동, 시민운동으로 또 감옥에 갇히면서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온 전성 변호사는 한국 현대사를 몸으로 겪으며 격렬하게, 뜨거운 심장으로 사회 운동가의 삶을 살았고 또,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받쳤다.

이후 뜻을 세워 다소 늦게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한 후 고시에 합격해 곧바로 변호사를 개업했고 아직도 초심을 잃지 않고 민주화 운동을 펼치고 있다.

변호사사무소를 개업하자마자, 대북 지원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부설 법률지원센터인 ‘우리 동포’를 열어, 국내 정착하고 있는 북한 이탈 주민(새터민)과 재외 동포들을 위한 무료 법률 활동을 해왔다.

그리고 전성 변호사는 아직도 사회운동가로의 활동을 진행 중에 있다. 지난 18일 강원 5·18 민주화운동동지회 최윤 회장, 김래용 회원과 함께 최근 5·18 북한군 개입 관련 발언을 한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을 춘천시 춘천지방검찰청에 고소하기도 했다.

고향인 홍천에 둥지를 튼 전성 변호사를 만나 그의 철학과 홍천 발전 방향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배재고,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전성 변호사는 자신이 가진 인적네트워크를 활용해 자신이 태어난 고향 홍천 발전을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변론한 내용이 기사화된 신문 스크랩을 보며 잠시 회상에 잠긴 전성 변호사

고향인 홍천에 기억에 대한 기억은..

홍천 남면 시동에서 태어나 6살 때까지 살았다. 교사인 아버지의 전근에 따라 인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도 안성에서 안법중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로 올라가 배제고, 고려대 정치외교학교를 졸업했다. 홍천에서 살았던 기억은 짧지만 두촌면과 인접한 인제신남에서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다녔고, 많은 국민학교 동창들이 홍천농고에 입학했기 때문에 늘 고향인 홍천에 대한 밀접한 정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년이 되어서는 수도권에 살면서도 홍천 출신 출향 인사들과 가깝게 지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항상 홍천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대학생 때는 운동권 학생이었다고 들었다.

77년 입학당시는 거의 모든 대학교에서 시위를 하던 시절이었다. 반 유신운동(박정희, 1979년)과 광주항쟁 진상규명 운동(전두환, 1980년)으로 두 차례 제적당하고 감옥에 갇혔다. 그때부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컸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시작한 투쟁이 평생을 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어떤 일들을 했나.

졸업한 이후에는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에 투신해 민주화 운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민주노동조합운동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구속돼 또 다시 감옥에 갇혀 옥고를 치렀다.

감옥에서 나온 뒤 경실련 기획실장을 역임하며, 본격적으로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광주항쟁 진상구명 운동으로 투옥됐으며, 노동자 정당 건설운동 과정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을 당하는 등 역사적 항쟁을 직접 몸으로 겪으며 평생을 민주화를 위해 운동권으로 투쟁의 길을 뜨겁게 걸어왔다.

다소 늦은 나이에 변호사가 됐는데, 그 계기는 무엇인가..

내 나이 마흔이 되던 해인 98년 그동안 정지됐던 고시자격이 회복됐고, 뜻한바 있어 99년에 고시공부를 시작해 5년 후인 2004년 사법시험에 합격, 2007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그해 서울에서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했다. 사법시험공부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2001년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지정됐기도 했다.

변호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재판은..

여러가지 사건과 변론이 있었지만, 광주항쟁 진압군으로 투입돼 정신질환을 얻은 친구를 위해 2009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 끝에 승소해 국가유공자로 등록, 국가배상을 받아낸 것이다.

또, 2013년 대통령긴급조치제9호 위반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을 위해 재심을 청구, 무죄 및 배상 판결, 2017년 부당한 출국명령을 받은 조선족들을 변호해 승소,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아낸 것이다.

여러 정치인과 친분도 있고 현재 민주당 당원인데 내년 총선에 출마할 예정인지..

민주화 운동을 함께한 동지들이 다수 정치에 몸담고 있다. 그래서 민주당에 입당하게 됐다. 그리고 내년 총선 출마는 염두에 두고 준비하고 있다.

홍천을 위해 무슨 일을 준비하고 있나..

내 남은 모든 것 홍천을 위해 바칠 각오로 홍천에 내려왔다. 법률 상담으로 공익적인 측면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그동안 농촌에 대해 많은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나는 도시와 농촌을 연결할 수 있는 인적네트워크가 있다. 이런 인프라를 통해 각박한 도시와 어려운 농촌을 교류해 홍천이 활력을 되찾게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 홍천은 접경지역은 아니지만 군사도시로 굉장히 중요한 곳이다. 홍천을 평화도시로, 남북이 교류하는 컨텐츠를 만들어 활로를 찾아야 한다. 이러한 일들은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홍천의 지인들과 함께 힘을 모아 추진할 것이다.

바쁜 일정을 소화 하고있는데..홍천군민에게 하실 말씀은

서울과 홍천 그리고 철원, 인제 등을 오가며 시간을 쪼개며 살고있다.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고향에 내려오니 마음이 편하다. 앞으로 홍천 군민들의 삶에 깊이 들어가 그들의 애환을 알고 상담을 통해 법률적으로 풀어 주고 싶다. 홍천군민에게 무료로 상담해 주고 싶지만 나중에 기부행위가 될까봐 어쩔수 없이 최소한의 금액으로 상담을 해주고 있다. 홍천은 내고향인 만큼  홍천 군민들도 나를 친구처럼, 이웃처럼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평생을 민주화를 위해 투쟁을 해온 전성변호사

전성 변호사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주요 프로필

▲서울특별시 법률고문 ▲농업중앙회 고문변호사 ▲한국농어촌공사 법률고문 ▲(사)접경지역 미래발전연구소 소장 ▲더불어민주당 강원도당 평화접경지역 특별위원회 위원장

전성 변호사가 걸어온 길

76년 배재고등학교를 졸업, 1977년 고려대학교에 입학, 이후 학생운동에 투신해 2차례 제적, 투옥. 1987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80년 광주항쟁 진상규명 운동으로 인한 투옥 ▲84년 서울 직업학교 냉동기계과 수석졸업 냉동기계기능사 2급 기사 취득 ▲89년 경기남부지역 노동운동단체협의회 공동대표 ▲90년 전국민족민주운동 연합 중앙위원 ▲91년 노동자 정당 건설운동 과정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93년~1994년 경실련 기획실장으로 일하며 금융실명제 주도 쌀과 기초농산물 수입개방저지 범국민비상대책위원회주도 ▲95년 중국 연변대학 민족연구소에서 북·중 교역관계 조사 ▲04년 제 46회 사법고시 합격 변호사 이후 활동 ▲07년 사법 연수원 수료 법률사무소 창신 개업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법률지원센터 소장 ▲08년 한국 투명성 기구 감사(사)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 감사 ▲09년~2013년 민주화 운동 기념 사업회 감사~18년 (사)한국 DMZ 평화생명동산 부이사장 ▲15년 한국도로공사 법률자문변호사~2016년 인본사회 연구소 이사장 ▲16년~18년 경기도 고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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