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옛날 홍천에도 사람이 살았었다네 (2)
아주 옛날 홍천에도 사람이 살았었다네 (2)
정탄(町畽) 조원섭의 향토문화 보고서
지역학 연구 ‘이야기로 보는 홍천’⑨
  • 더뉴스24
  • 승인 2019.03.09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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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화촌면 군업리 고인돌군’이다.

홍천에서 서석면 쪽으로 가는 56번 국도의 왼쪽에 위치한 군업 2리 고인돌군은 1986년 강원도 기념물 56호로 지정되었다. 홍천군에서 유일하게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는 고인돌로 이곳에는 총 16기의 고인돌이 산재해 있는데 군업 2리 658-2번지 도로 우측 편에 1기의 고인돌이 위치해 있으며, 그곳에서 군업천을 따라 서석방향으로 약 300m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좌측으로 15기의 고인돌이 밀집되어 있다.

독립적으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 1기의 고인돌 주변을 살펴보면 과거에는 더 많은 고인돌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이 위치한 곳에서 남쪽으로는 높은 산이 막혀 있고 동서쪽으로는 너른 들이 펼쳐져 있을 뿐 아니라 군업천이 흐르고 있어 청동기인들이 생활환경으로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5기가 밀집되어 있는 고인돌군 중심부에는 3기의 민묘가 있으며 묘의 비문으로 보아 순흥 안씨 소유지역임을 알 수 있으며 고인돌은 분묘를 조성하면서 옮기거나 파손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추측된다.

두 번째는 ‘남면 시동리 고인돌군’이다.

‘음터골’에 자리하고 있는 시동리 고인돌은 총 7기였다. 남면 농협 시동지소와 시동 우체국 두 건물 사이로 난 길을 따라 35~40m 정도 올라가면 이강수씨 댁 앞으로 고인돌군이 보인다. 유적 앞쪽으로는 지둔지라 부르는 들이 펼쳐져 있으며 그 사이로 양덕원천이 흐른다.

시동리에서 확인한 고인돌은 모두 개석식 고인돌이며 편마암 재질로 만들어 졌다. 이강수씨 댁 입구 좌측 1기의 고인돌과 시동교회앞 주차장의 1기의 고인돌만이 덮개돌이 겉에 드러나 있고 4기는 일부만 노출되어 있거나 파묻혀 있기 때문에 전체의 모습을 판명하기 어렵고 1기는 흔적이 없어 안타깝다.

세 번째 ‘북방면 하화계리 백이 고인돌군’이다.

하화계리 백이 고인돌군은 하화계리 구석기가 발견 곳에서 남쪽으로 약 20m 떨어진 곳의 군부대 안에 위치하고 있다. 고인돌이 위치한 지점에서 남쪽으로는 하화계리의 넓은 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홍천강이 보인다. 현재 백이 고인돌군에는 4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으며 2017년 현장탐방 시 발견된 부대 밖 민묘 주변의 확인되지 않은 1기를 포함하면 5기가 있다.

마을에서 고인돌군을 ‘칠성바위’로 부르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원래는 7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군 중앙의 연고가 없는 1기의 솟을묘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민묘가 함께 위치해 있다. 고인돌의 재질은 화강암, 편마암으로 만들어 졌다. 덮개돌의 형태는 네모꼴이 주를 이룬다.

네 번째 ‘북방면 구만리 고인돌군’이다.

홍천군 북방면 반석들길 3번지 지용한옥학교 내(옛 구만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아래 고인돌 떼와 북방면 팔봉산로 1340-15번지 고 박동윤씨 댁 뒤뜰에 있는 위 고인돌 떼 2개소로 구분된다. 이 고인돌들이 위치한 지역은 옛날부터 반석들이라고 불리던 곳으로 그 이름이 지어진 유래는 바로 고인돌이 반석같이 생겼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인돌이 발견된 배경은 구만초등학교 교사 임태준 선생님이 부임하여 이 반석들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부터이다. 그는 1992년 강원대학교 사학과 유적 조사단에 이 반석들에 대하여 조사를 의뢰하였다.

1995년 현지 조사 중 새로이 발견된 고 박동윤씨 집의 고인돌 5기는 주민들의 증언으로 7기였었고 칠성바위 이름이 있었다는 사실로 구만초등학교 고인돌과고 박동윤씨 댁 고인돌 모두 각각 7기가 있었을 것으로 보여 진다.

 현재 학교에는 탁자식 고인돌 1기와 개천에 다리를 놓기 위하여 건너질러 놓은 돌 1기가 남아 있었고, 5기는 훼손된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개천의 1기 덮개돌도 지금은 농지개량공사 후 찾기가 어렵다. 고 박동윤씨 댁 고인돌 5기 중 1개는 장독대로 사용하는 것을 포함하여 3기가 뒤뜰에 있고 2기는 울타리 나무 담장 밑에 덮여 있어서 쉽게 잘 보이지는 않는다.

2기는 집뒤의 인삼밭 속에 있었는데 농사짓는데 방해가 되어 밭에 깊게 파서 묻었다는 증언을 한다. 구만리 고인돌은 우리나라 북쪽지방에 많은 탁자식이며 덮개돌만 보이는 것은 앞으로 시굴을 하여 아랫 구조를 확인하여야 할 것이다.

다섯 번째 ‘북방면 하화계리 소단리 고인돌군’이다.

1991년에 발견된 하이트진로 공장으로 건너가는 교량 좌측 편 하화계리 소단리 고인돌 유적은 하화계리 사둔지 중석기 시대 유적에서 서북쪽으로 약 320m 정도 떨어진 강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총 4기의 고인돌이 남북으로 10m 정도의 거리 내에 세모꼴로 분포하고 있었으며, 2호 고인돌은 예비군 참호를 만들면서 옆으로 밀려 내려간 상태이었으며, 3호 고인돌은 양수장 옆으로 옮겨져 두 동강난 모습이었으며. 훼손된 정도가 심해 조사 시 어려움을 겪었으나 그 중에 3기는 개석식으로 밝혀졌으며, 고인돌의 암질은 모두 화강암이었다고 한다. 1996년 홍천강의 범람을 막기 위한 제방공사로 모두 강둑 속에 묻혔다고 한다.

이외에도 개운리 개운삼거리 슈퍼앞의 2기의 고인돌, 월운리 방량교옆 버스정류장의 1기의 고인돌, 월운교회 건너편 인삼밭가의 1기의 고인돌, 유치리에 1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버스정류장의 의자로 활용되고 있거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홍천군 관내에서 발견된 아홉 군데의 고인돌군을 소개하였는데 아쉽게도 군업리 고인돌군만 강원도 기념물로 56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을 뿐 나머지는 기념물로 지정되지도 않았고 어떠한 표지판도 설치되어 있지 아니하며, 하화계리 백이 고인돌군은 부대 안에 위치하여 있다.

구만리 고인돌은 2개는 밭에 묻혔고 1개는 위치 확인이 안되며, 5개는 민간주택 안에 있어 장독대로 이용되는 등 전혀 관리되지 않고, 시동리 고인돌은 잡초 속에 묻혀 있어 고인돌인지 분간도 어려우며, 하화계리 고인돌군은 강둑 속에 묻혀있다.

이와 같이 관리가 어려우면 현장에는 표지석을 세우고 무궁화공원으로 옮겨 홍천에도 선사시대 유적이 있었음을 자연사 고인돌 공원으로 조성하는 방안도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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