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지역인류의 절반가까이가 죽었던 14세기 흑사병과 이번 변종코로나의 세계적 전염사건을 대등하게 비교하는 것은, 흑사병 이후 이태리 북부에 ‘공화국’이라는 전혀 새로운 정치체계가 출현했듯이 이번 코로나 확대사건은 인류문명, 즉 지구인의 삶의 방식을 전반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지탱해온 사회 역학구조와 시스템의 운행방식이 괘도수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먼저, 그동안 반론을 허용치 않았던 ‘세계화’에 제동이 걸렸다. 전염을 막기 위해 항공운항이 중단되고, 하늘길이 막히니 국가별로 분업화되었던 산업구조의 작동이 멈춰버렸다. 가격경쟁력 때문에 그 동안 중국에서 공급되던 생산 원부자재의 공급이 끊겼다. 생산뿐만 아니라 소비시장도 마찬가지다. 가장 큰 소비시장인 미국에서 방역용 마스크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의 필수품인 화장지를 구하지 못해 대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반세기 동안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지구촌 전체에 경천동지할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절박한 상황 앞에서 그 동안 상생협력체제였던 국가별 정치 경제 문화의 작동형태가 자국우선주의로 선회하였다. 어제의 동맹국이라 하더라도 자국민보호를 위해서는 당장 비자가 불허되고 입국이 강제 중단될 수 있다. 강국들의 국수주의로 인해 WHO와 같은 세계적인 협약체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생산의 산업화와 전 지구적으로 연결된 가치사슬이 보이지 않는 변형 바이러스의 소리 없는 공격 앞에 힘없이 무너지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꾸준히 진행되어왔단 “도시 집중화”현상도 된서리를 맞기는 마찬가지다. 확진지가 나오면, 아파트나, 병원, 심지어 관공서까지도 일정기간 기능이 강제 중단된다.

현재,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인구의 절반이 도시에 살고 있다. 단순히 도시만 커진 것이 아니라 기능상 거대 도시들끼리 생명줄 과도 같은 긴밀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있는데 그 작동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다. 예컨대 금융의 허브인 홍콩은 거리상으로는 중국과 가깝지만, 그곳에 경제시스템은 미국 뉴욕과 더 가까웠다. 이렇게 대륙을 넘나드는 연결선과, 거대 도시에 의존된 지방 도시들의 기능과 삶의 작동모습이 기존의 방식대로 예전처럼 지속된다는 것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미지의 일이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우리는 그냥 손 놓고 운명의 노예가 될 수만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되, 가능한 일부터 생존에 유리한 방식을 찾아 나서야 한다. 지속 가능한 모델을 개발하고 이른바 '신 인류'가 사는 보편적 방식을 설정하여 그 비전에 따라 인내를 가지고 시행착오를 견뎌내야 한다.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환경을 대면하면서, 예전에 사용하지 않았던 정책들도 과감히 검토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행복이라고 느꼈던 과거의 습관적 삶 일지라도 개념정리를 다시 할 필요가 있다. 뜬구름 같았던 허영이나 허세의 묶은 때를 걷어내야 한다.

진정, 행복한 삶이 무엇인가? 자연은 바쁘지 않은데 허영에 들뜬 인간만이 허둥지둥하지는 않았는가? 깊은 산 계곡에서 길을 잃으면 능선으로 올라가야 길을 찾듯이 혼돈된 가치관에 함몰된 우리의 생각과 생활방식에서 길을 잃었다면, 그 동안 반성이 허용되지 않았던 관습의 감옥을 벗어나 원점에서부터 다시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 19는 끝나지 않았다. 19가 끝난다 해도 변이된 유사 바이러스는 주기적으로 출현 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과거 향수에만 젖어있을 때가 아니다. 밀려오는 변화의 파도를 주체적으로 맞이하기 위해서 지혜를 모아 새로운 삶의 모델을 설계하고 조정하면서 적응해야만 할 때다. 여기에는 민과 관이 따로 없다.

 

저작권자 © 더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