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밭들 7

사십이 년 만에 귀향한 긴밭들
도회지 불빛에 쫓겨 밀려온 어둠과 고요 빼곡하다
건너 주막에서 아슴아슴 새어 나오는 불 빛만 아련하다
막걸리 마시러 가려면 돌부리에 넘어지거나
곡식을 짓뭉개거나 도랑에 빠지기 일쑤다
그런 날은 별 꽃들이 현란하다
그 꽃들 자박자박 내려와 수런수런 이야기하는 날이면
풀벌레 울음소리 밟힐까 제대로 다니지 못한다
소음 어둠 고요들이 내 몸속을 수없이 드나든다
하지만, 끝내 공간을 지키는 것은 어둠과 고요라는 것
나뒹굴다 제풀에 지치는 소음 어둠과 고요 이긴 적 없다
최종적 승자는 밤 가시처럼 까슬까슬한
가을 햇살까지 죄다 삼켜버리는 어둠과 고요다
읽거나 쓰는 나에게는 참 좋은 친구다

- 시집 『거룩한 행자』(2018)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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