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밭들 1

 성산터 길목 동네 어르신으로 불리는 밤나무가 있다 갈라지고 들뜬 흙색 수피를 보아 족히 백 살은 넘었을 것이다 유월이면 진동하는 수꽃 내에 감전된 여인들 콧구멍 실룩거린다 팔라당팔라당 날리는 이파리들, 유아들 탈 없이 잘 자라도록 가시 옷 입혀 무럭무럭 키운다 양수 없이 붉은 알밤 울컥울컥 토해내면, 이웃 댕댕이들 허공 북북 찢어대며 컹컹 짖고, 다산으로 수척해진 근골 비 햇살 바람에 매 맞은 잎들 흙으로 돌아가 깊은 안식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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