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군지(洪川郡誌)오류 2..지명역사를 지운 군지
홍천군지(洪川郡誌)오류 2..지명역사를 지운 군지
일제강점기는 있고 이전의 역사는 사라진 지명유래
  • 오주원 기자
  • 승인 2021.01.14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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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군지의 총체적 오류로 인해 논란이 된 가운데, 또 다시 문제가 제기됐다.

2018 『홍천군지』 중권 삶과문화, 제3장 읍·면·별 지명유래에서 홍천읍의 13개 모든 마을의 지명이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기록됐다.

그 이전의 유구한 역사는 잘라버리고 마치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홍천군의 마을지명이 만들어진 것처럼 돼버린 것이다.

일제가 우리 고유의 이름다운 지명을 쓰지 못하도록 마을지명을 바꿨지만, 강점기 이전의 지명을 제대로 수록하지 않아 지적이 일고 있다.

지명유래 첫 마을로 소개된 진리(津里)는 홍천읍 동남쪽에 위치한 마을로서 법정리이다. 본래 홍천군 홍천읍(현내면, 군내면)의 지역이었으며, 나루가 있었으므로 나루새라고 불렸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리(津里)라 했으며 흔히 진삼거리라고 했다.

또, 진리는 1757년~1765년에 편찬된 『여지도서』에서 첫 번째로 소개한 홍천의 첫 마을이다. 그런 만큼 진리는 홍천의 상징적인 마을이기도 하다.

홍천의 관문 진리는 『여지도서』 이후 발행되는 『홍천현읍지』, 『관동지』, 『홍천현 읍지. 백원정사 필사본』, 『관동읍지』, 『홍천현지』, 『홍천군읍지』, 『강원도지』에 모두 기록된 마을이다. 그럼에도 2018년 『홍천군지』에서는 그 역사가 사라졌다.

신장대리(新場垈里), 홍천읍 중심부에 위치한 법정리로서 본래 홍천군 홍천읍(현내면)의 지역이었으며, 새로 전통 5일장이 열려 새 장터 또는 신장대(新場垈)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장터를 병합, 신장대리라 했으며 1985년 5월 1일 3개 행정리로 분리돼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신장대리 역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장대리라 하였다’고 적고 있다. 1871년 『관동읍지』에서는 방리 항목으로 기록돼있다. ‘新場垈里 自官門南距三里. 신장대리 관문으로부터 남쪽 3리에 있다’ 신장대리 역시 일제강점기 생긴 마을로 이전의 지명을 잘라버렸다.

이 외 군지 지명유래에서는 ‘희망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숲밭, 개때배기, 오리정을 병합하여 희망리라 하였다.

갈마곡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화양교 건너편 남산쪽의 짓골, 속개, 닥바우를 병합하여 갈마곡리라 하였다.

검율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당뿌리, 음달말을 병합하여 검율리라 하였다.

와동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새터, 와촌, 동막을 병합하여 와촌(瓦村)과 동막(東幕)의 이름을 따서 와동리라 하였다.

태학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기, 여냇골을 병합하여 태학리라 하여 홍천면(洪川面, 현 홍천읍)에 편입되었다.

연봉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배목기, 관텃골, 절골, 밤나뭇골을 병합하여 연봉리(連峰里)라 하였다.

하오안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구시울, 굴골, 도새울, 둔지미, 오리나무정을 병합하여 하오안리라 하여 군내면(郡內面)에 편입되었다.

상오안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웃말〔상촌(上村)〕, 새술막〔신주막(新酒幕)〕, 공골〔공곡(貢谷)〕, 며느리고개말〔부치촌(婦峙村)〕, 청룡우(靑龍隅)를 병합하여 상오안리라 하였다.

장전평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갈골〔갈곡(葛谷)〕, 논골〔답곡(畓谷)〕, 먹실〔묵실(墨室), 묵곡(墨谷)〕, 안흥리(安興里), 지둔지(榛屯地)를 병합하여 장전평리라 하여 현내면(홍천읍)에 편입되었다.

삼마치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너픈터, 독골, 솔골, 새말, 원터를 병합하여 삼마치리라 지명하고, 1962년에 홍천읍에 편입되었다’ 로 나열됐다.

이처럼 홍천읍의 13개 모든 마을의 지명이 일제 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되어 버렸다.

비단 홍천읍만이 아니다. 2018 『홍천군지』에 소개된 1개읍 9개면 101개 마을지명 중 100개 마을 소개에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가 마을의 역사를 잘라먹고 난도질을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 문구가 없는 유일한 마을은 두촌면 괘석리다. 괘석리는 1914년 이후에 생긴 마을로 1941년에 만든 『강원도지』에 와동리, 역내리, 광암리, 성수리가 처음으로 지명이 올라와 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한 96개 마을의 역사가 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를 기준으로 재단했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 항목의 큰 제목은 ‘지명유래’다. 그 아래 작은 제목이 ‘읍면별 지명유래’다, 지명(地名)은 마을이나 산천, 지역 등의 이름이다. 유래(由來)는 그 지나온 내력이다. 읍·면·별 지명 유래는 그 마을의 이름에 관한 내력이고 역사다. 그럼에도 역사는 사라지고 일제강점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만 남았다.

따라서 지명유래는 1914년 통폐합이 아닌 이전과 최근의 역사를 토대로 다시 씌여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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