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탄 조원섭의 홍천 향토문화보고서

지난  3회째 연재에서는 홍천읍 금석문중 연봉리 무궁화공원옆 도로가에 2열로 세워져 있는 16개의 강원도 관찰사(순찰사) / 홍천현감 선정비 일부를 소개하였다.

겸순찰사 정시성 애민선정비는 홍천과 정선, 경북울진(조선시대에는 강원도 강릉부 울진현) 등 3개소에 설치되었는데 건립연도는 동일한 1682년(숙종8년)임에도 홍천의 선정비는 명나라 연호인 숭정(崇禎)을, 정선의 선정비는 청나라 연호인 강희(康熙)를 사용하였으며 홍천의 선정비는 조선선정불망비군총록(김동복)에 의하면 내촌면에 있다고 기록되어 홍천읍으로 이전 설치된것으로 추정된다.

현감 이세백 강명청덕애민선정영세불망비는 재임기간이 끝난 1676년에 건립되었으며 현감 이세백은 재임기간중 1675년 범파정(泛波亭) 동쪽 담장옆에 양망헌(兩忘軒)을 창건하였으며, 1675년 증광문과에 급제후 여러 직을 수행하고 충청도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관리의 폐단과 백성의 어려움을 보고하여 바로 잡도록 촉구하였다.

1684년  황해도관찰사 이듬해 평안도관찰사를 수행하며 선정을 베풀어 그곳 백성들이 이원익의 사당에 함께 제사하였다고 전해진다. 그후에도 1697년 이조판서를 거쳐 1698년 우의정, 1700년에 좌의정을 수행하고 인현왕후 국상을 총괄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제65대 현감 최일애민선정비와 제59대 현감 이한청백선정비를 소개하였다.

이번회에는 홍천현의 도윤(都尹)을 혁파한 공으로 영세불망비가 건립된 강원도순찰사 윤성대 본현도윤혁파영세불망비와 홍천현감 남지구 도윤혁파영세불망비를 소개하고, 역대 홍천현감 중 선정비를 2개이상 세워진 6명의 현감중의 한명인 남지구 애민선정비, 그리고 홍천현읍지 읍선생안에 따르면 재임기간중 파직 / 교체되었음에도 선정비가 세워진 3명의 홍천현감 윤홍거 애민선정비, 현감 이장오 애민선정비, 현감 윤형은 청덕애민지비를 소개한다.

도윤은 숙종원년(1675년) 9월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을 실시할때에 면단위에 둔 직위로서 면의 책임자이다. 면에는 도윤과 부윤 각 1명씩을 두었는데 지방에 따라 여러 문제가 대두되어 홍천현에서는 1831년에 강원도관찰사 윤성대와 홍천현감 남지구에 의하여 혁파된것으로 추정된다.

홍천현감 남지구는 조상의 공덕으로 약관 20세에 벼슬(음관)에 올라 己丑年(1829년)에 홍천현감으로 부임하여 3년여 재임후 壬辰年(1832년)에 광주판관으로 전임(轉任)되었다. 애민선정비는 재임기간중인 道光10년(1830년)에 건립되어 재임기간중 선정비가 건립된 5명중의 한명으로 기록된다.

비문 전면 좌측에 영귀미(詠歸美)로 새겨진것으로 보아 동면에 건립된 것을 이전한것으로 추정된다.

순찰사 윤성대 본현도윤혁파영세불망비
순찰사 윤성대 본현도윤혁파영세불망비
현감 남지구 도윤혁파영세불망비
현감 남지구 도윤혁파영세불망비
현감 남지구 애민선정비
현감 남지구 애민선정비

홍천현읍지 읍선생안에 보면 이유는 기록이 없지만 여러명의 현감이 재임기간중 파직 / 교체된 기록이 있다.

그런데도 그중의 3명의 현감이 애민선정비라 하여 건립되어 있다. 선정비라함은 그 지방에 대한 고을 수령이 통치가 결실을 맺고 평가가 난 뒤에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고마워하며, 선정비가 세워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아니함에 아이러니를 느낀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는 다음과 같이 비(碑)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현감 윤홍거는 1649년에 어사보고로 교체되었으며, 현감 이장오는 1836년 혐파(파직), 현감 윤형은은 1650년 하위직귀로 전보되었다고 홍천현읍지 읍선생안은 기록하고 있다.

돌에 덕을 새겨 칭송하여 영원히 본보기가 되게 하고 마음속으로 반성하여 부끄럽지 않게 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음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것 같다.

현감 윤홍거 애민선정비
현감 윤홍거 애민선정비
현감 이장오 애민선정비
현감 이장오 애민선정비
현감 윤형은 청덕애민지비
현감 윤형은 청덕애민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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