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홍천의 금석문(金石文)이야기 ⑧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홍천의 금석문(金石文)이야기 ⑧
정탄(町畽) 조원섭의 홍천 향토문화보고서 화촌면, 두촌면 금석문 소개,
  • 조원섭 기자
  • 승인 2021.04.27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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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곱번째까지는 필자의 정리한 74개 금석문 가운데 24기가 있는 홍천읍을 소개하였고 금번 여덟번째에는 홍천군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화촌면과 동북쪽의 두촌면의 금석문에 대하여 소개하기로 한다.

화촌면은 홍천군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면적은 약 211㎢(군의 11.6%)이며 인구는 4,700여명이다. 법정 11개리, 행정 18개리를 관할한다.

1413년(태종13년)에 처음으로 화촌(化村)면으로 명명된 이래 化村 또는 花村으로 불리다가 1895년(고종32년) 홍천 9개면 중 하나가 되었고

일제강점기 1917년 행정구역 개편시 화촌(化村)면으로 개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홍천군지에 의하면 면의 소재지는 본래 구성포리에 있었으나 1917년 성산리로 옮기고 한국전쟁때 소실되어 외삼포리에 임시 면사무소를 설치하였다가 지금의 자리에 면사무소를 복구하여 재 개청하였다고 한다.

내삼포리는 화촌면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본래 홍천군의 옛 고을터였다고 하며 삼정포(三汀浦)의 안쪽이라 하여 내삼포라 한다고 한다.

홍천군 문화유적분포지도에는 내·외삼포리, 구성포리, 송정리,굴운리 등의 홍천강가에는 구석기시대 유물 산포지로, 외삼포리 청동기시대 수혈수거지, 군업리에는 홍천군 최대의 청동기시대 고인돌군이, 성산리에는 철기시대의 수혈수거지가 분포되어 있으며 외삼포리에 이항로선생 우거지(寓居地)가 있다.

화촌면 성산리의 선사시대 유적과 군업리 고인돌군
화촌면 성산리의 선사시대 유적과 군업리 고인돌군

군업리에는 밀양박씨 열녀각, 김열 묘, 김규현 효자각이 있으며 장평리에는 사기규 효자각 등 16기의 유적 / 유물을 소개하고 있으나 금번 필자의 정리한 금석문중에는 송정리구장 김교하영세불망비만을 소개한다.

홍천읍에서 화촌면 구성포로 가는 옛 국도변 송정리 76-1번 구송초등학교 300M 못미쳐 오른쪽에 영세불망비가 있는데 1944년에 건립되었고 공적은 별도로 기록되지 않았다.

두촌면은 홍천군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140.5㎢로 군의 7.7%를 차지하고 법정 7개리, 행정 15개리를 관할하며 인구는 2,400여명이다.

1018년(고려 현종 9년)에 두촌(頭村)면이라 하였고 홍천군의 동쪽 끝에 있다 해서 말촌(末村)면이라 하였다고 하는데 각종 지리지에 말촌면으로 기록되어 있다.

1872년 지방지도에 두촌(斗村)면으로 기록된 이후에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홍천강의 발원지가 미약골로 되기까지 괘석리의 경수천이 발원지로 불리기도 하였다.

여지도서에 천감역이 기록되어 있는데 홍천의 연봉역과 함께 주요역이었으며, 연봉역에 없는 3칸의 원(院)이 있어 규모가 더 컸었던 역으로 추정된다.

또 철정리의 북창(北倉)마을이라고 있는데 이곳은 내촌천과 합수되는 아오라지마을과 가까이 있으며 조선조때 홍천의 4대 창고(동창(물걸리), 서창(반곡리), 남창(신대리))중의 하나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말을리(末乙里) 마암(馬巖)에서 철이 생산된다고 기록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괘석리의 대명광산(동양홍천금산), 자은리의 소림광산(홍천광산)이 있어 철과 금의 생산지이기도 하고 현재에도 희토류가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철정리, 역내리에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의 수혈주거지와 고분이 발견되었고 역내리의 삼국시대 고분군, 통일신라시대의 건물지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또한 장남리 3층석탑, 괘석리 사사자3층석탑, 무수동의 3층석탑 등이 현재 있거나 있었던 지역으로 불교의 중심역할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기록으로 확인되고 있지는 않으나 철정리의 향교골이라는 지명이 있어 예전에 홍천향교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말고개는 한국전쟁때 육탄용사들이 공산군의 전차를 막아낸 전적지이고 하고 (구) 76사단사령부내에는 육탄용사 전적비가 있으며, 장남리에는 한국전쟁시 지뢰를 밟은 한국군을 구하고 산화한 프랑스군 의무대장 줄장루이소령 추모비가 위치하고 있다.

두촌면 철정리 철기시대 유물과 역내리 삼국시대 고분유물
두촌면 철정리 철기시대 유물과 역내리 삼국시대 고분유물

두촌면에는 철정리와 자은리, 괘석리 등에 7기의 금석문이 있다.

철정리 기념비군

두촌면 철정리에는 지금은 폐교된 철정초등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5년 9월19일 두촌공립보통학교 부설한계간이학교로 개교되어 해방 후 철정국민학교, 철정초등학교로 개명되어 2013년 2월 8일 제67회를 끝으로 총 1,884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2014년 3월 1일부로 폐교하였는데, 폐교 부지 내에는 5기의 비가 위치하고 있다.

원래 이 비는 처음부터 학교 내에 있던 것은 아니고 철정도로가에 있던 것을 도로공사로 학교 정문 왼쪽으로 옮겼다가 지금은 폐교부지 안쪽으로 옮겼다고 한다.

현재 면사무소는 자은리에 있지만 홍천현감들의 선정비가 철정리에 있었다는 것은 조선시대에는 철정리가 두촌면의 중심지가 아니었나 추정된다.

기념비 5기 중 3기는 홍천현감/군수 선정비이고 2기는 학교 개교관련 공로자의 기념비이다.

 

군수 김시명 송덕비(郡守金時明頌德碑)

두촌면사무소 내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두촌초등학교에 있던 것을 1976년 도로 정비를 하면서 현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두촌초등학교 내에 원래는 3기의 비가 있었는데 1기는 군부대에서 가져가 부대 기념비로 만들고, 1기는 두촌초등학교 설립 기념비로 만들었다고 한다.

 박구장원약기념비(朴區長元若紀念碑)

두촌면 자은리에서 괘석리를 가다 보면 달음재(대명어터 고개마루) 정상에 다다른다.

오른쪽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괘석리라는 마을 석비와 작은 기념비가 하나 눈에 보인다. 어디에도 소개되지 않은 기념비이다.

박구장원약기념비(朴區長元若紀念碑)라는 비명이 있고 그 좌우에는 “돈과 곡식을 기부하여 빈곤과 기아를 극복하고 학교육영 등을 칭송한다”는 한자 비문이 새겨져 있다.

측면에는 소화7년(1932년) 9월에 세웠다는 건립연대가 보이고 또 다른 측면에는 괘석리 유지라는 세운이가 새겨져 있다.

박원약구장은 괘석리에서 훈학을 하다가 땅을 희사하여 『갈잎학교』를 세우고 집이 먼 아이들을 학교에서 머물며 다니게 하였는데 6.25 한국전쟁때 소실되었다.

괘석리에는 일제 강점기시절 1934년부터 두촌심상소학교 부설 괘석간이학교가 있었고, 1956년 협성국민학교로 재 개교하였으며 그 이후에 학생수가 줄어들자 통학여건을 고려하여 내촌초등학교 협성분교장으로 유지하다가 1999년 폐교되었다.

박구장원약기념비와 갈잎학교 소개문

다음 아홉번째에는 애국충렬의 고장 내촌면의 금석문을 소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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