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홍천(洪川)의 금석문(金石文)이야기 ⑩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홍천(洪川)의 금석문(金石文)이야기 ⑩
정탄(町畽) 조원섭의 애국충렬의 고장 내촌면 서곡리의 금석문
  • 조원섭 기자
  • 승인 2021.05.28 1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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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아홉 번째에서는 홍천군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독립만세운동의 함성과 팔열사 정신이 깃들어 있는 물걸리 동창마을의 기미만세공원과 6,25 한국전쟁 전 / 후에 대한청년단, 국민방위군, 지하결사대 등의 조직원으로 조국을 수호하다가 장렬히 산화하신 영령들을 모시는 호국용사 추모비 / 구국지사 추모비가 있는 애국충렬의 고장 내촌면의 금석문 중 1차로 물걸리 홍천현감 선정비 5기, 기미만세운동 순국 팔열사 기념비, 내촌면사무소내 면장 이완익기념비, 내촌초등학교 교정내 이성옥여사 기념비에 대하여 소개했었다.

이번 열 번째에는 내촌면사무소에서 5분거리에 있으며 홍천강의 발원지 서석면 미약골에서부터 수 억년 동안 흐르는 내촌천의 물이 만들어 낸 만물상의 덕탄바위 300년 이상 자란 소나무 숲이 있는 향기나는 서곡마을의 백우산 자락 쌍계사지 금석문과 덕탄(德灘) 암각명을 소개한다.

덕탄은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수반위의 바위들이 흐르는 물의 양에 따라 변화하는 풍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품성이 너그러워지고 고매해 진다는 명승지이다.

향기나는 서곡마을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살기 좋은 마을이 되도록 사람의 향기가 나고, 마을의 향기가 나고, 자연의 향기가 나는 마을을 만든다는 정체성으로 동네가 항상 아름다운 마을, 주민 모두 더불어 사는 마을, 친환경적인 먹거리의 마을, 복지시설들이 훌륭한 마을로 방향을 잡고 아름다운 경관을 얘기하면서 걷기문화 체험이 가능하도록 이야기골프길, 덕탄 생태 탐방로와 가족공원, 서일공원이 있다.

마을 신앙으로는 동짓달 초사흘 (음력 11월 3일) 서일 실고개 마루턱에서 돼지머리를 제수로 차려 놓고 선발된 마을대표가 주민의 행운과 소원을 빌며 성황제를 지낸다. 그리고 전 부락민이 모여 지난 1년을 결산하고 신년 계획을 의논한다.

쌍계사지(雙溪寺址)는 내촌면 서곡리 백우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 현재 쌍계사가 있는 곳에서 북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언제 창건된 사찰인지는 불분명하다. 홍천군지에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창건됐다고 추정된다고 하였고 수타사의 사적기록인 건봉사급 건봉사말사사적과 강원대 강원문화연구소의 홍천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에는 조선조 제17대 효종원년(1650년)에 수타사 부속암자로 도전(道詮)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절 앞에 암각된 기문의 옹정구년([雍正玖年(1731년, 영조 7)]이라는 기록으로 볼 때 1730년 이전의 사찰인 건 분명하다.

암각기문에 따르면 1731년(영조 7) 중수됐고, 쌍봉당대선사탑비(雙峰堂大禪師塔碑)의 승탑 건립 연대를 보면 조선 후기에 운영된 사찰이다.

절터 암각기문의 기록은 마모가 심해 판독이 어렵지만 사찰 중수 당시 신씨 가문에서 기와를 시주했다는 내용이다. 사명은 關東邑誌(1871)와 「共川地圖」 (1872)에서 확인된다.

서곡대사(瑞谷大師, 1702~1768)가 절터를 보고는 달걀을 묻으면 아침에 닭이 나와야 명당이라며 밤에 계란을 묻었는데, 새벽에 닭 두 마리가 나와 울어 쌍계사(雙鷄寺)라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조선 보물고적 조사자료에 사지로 나와 있어 20세기 초 폐사됐다고 추정된다. 절터에는 4단의 축대가 남아 있고, 암각기문과 다수의 기와편이 산포했다고 한다.

또한 지금의 쌍계사 근처에서 승탑비 2기, 승탑 7기, 맷돌, 치석재 3매, 승탑 하대석 등이 확인됐다고 한다(홍천 쌍계사 지표조사보고서, 2005).

현재 쌍계사 입구 좌측에는 승탑비 1기와 승탑 7기만 세워져 있다. 1800년(정조 24) 에 세워진 비석은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다.

과거 조사에서 확인됐던 암각비문, 반파된 승탑비 1기, 맷돌과 치석재 등은 볼 수 없었다. 비좌(碑座)만 1/4 정도 파손된 채 수풀 속에 방치돼 있었다.

한편 주지 스님은 부근에 조성된 연지(蓮池)로 암각비문을 옮겨 놓았다고 했다. 유구는 찾을 수 없었고, 유물은 고려 중기부터 조선 후기의 어골문, 수파문, 어골복합문, 사선복합문 와편과 백자편이 발견됐다. 일제 강점기 수종사(서울)에서 쌍계사로 온 강월하(姜月河)가 근처에 두 개의 물줄기가 있다 하여 쌍계사(雙鷄寺)에서 쌍계사(雙溪寺)로 고쳤다고 기록(태백의 읍면, 강원일보사, 1975)돼 있다. 남아 있는 부도군(浮屠群)으로 볼 때 유서 있는 절로 판단된다.

오랫동안 폐사로 다름없던 상태로 있다가 1940년 현재의 자리에 대웅전(大雄殿)과 요사채(寮舍寨)를 지어 중창했다. 홍천현지에는 쌍계암으로 나와 있다.

* 참고문헌 : 홍천군지(2018)

홍천군 내촌면 서곡리에는 덕탄 생태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덕탄(德灘)’은 ‘큰 여울’이라는 뜻으로 옛 유람객들이 이곳을 덕탄이라 불렀다는 유래가 있다. 덕탄에는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크고 작은 하얀 바위들이 밀집해 있어 풍광이 수려하다.

조선조 1700년대 이고장 한학자인 백설재(白雪齋)  허해(許垓 1744-1824)라는 선비가 남긴 허해백설제에 기록된 한시에 의해 그 역사가 전해지는데 1989년에 편찬된 홍천군지와 1996년에 간행된 홍천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따르면 덕탄 상류 왼쪽부근 깊은 계곡 옆 바위 위에 덕탄(德灘) 이라는 글자가 해서체(楷書體)로 1900년대 전반에 암각되었다고 전한다.

암각자 밑에는 오른쪽부터‘이완익(李完翼)・허충환(許忠煥) ・이진태(李鎭泰)・주석록(朱錫麓)・허용구(許容九)・최학형(崔學炯)’  등 6명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마지막 줄에는 ‘정묘(丁卯) 중양(重陽)’이라고 하여 바위에 암각한 간지를 적어놓았다.

1989년 편찬된 홍천군지에 따르면 ‘덕탄’ 암각자가 100년 전에 새겼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1927년 정묘년 중양일인 9월 9일에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이완익은 1920년부터 1926년까지 내촌면장으로 재임한 것으로 보아 허충환, 이진태, 주석록, 허용구, 최학형 등 5명은 내촌면의 유지로 추정된다.

* 참고문헌 : 홍천군의 역사와 문화유적(강원대학 강원문화연구소 / 1966) , 홍천군지(2018)

다음 열한 번째에는 서석면의 홍천현감 민태호선정비, 동창보 수로 암각명, 대한민국만세 암각명에 대하여 소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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