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이고 주관적인 홍천읍지 이야기 20

홍천이 들썩인다. 지난 4월 22일 제4차 국가 철도망 구축 계획에 용문-홍천 철도 연장 구간이 반영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탓이다. 확정은 아니지만 염원에 한발 다가선 것만으로도 한껏 달아올랐다. 철도의 시작과 끝은 역이다. 역은 사람을 끌어모으고, 그 사람들 사이로 경제가 흐른다. 홍천 기차역을 기다리는 이유다.

조선시대에도 역(驛)이 있었다. 교통수단이 버스와 기차가 아닌 말이었다. 역은 공무로 지방을 오갈 때 관리에게 말을 제공하는 곳이다. 역의 말은 마패가 있어야 이용 가능하다. 마패에 그려진 말의 수만큼 쓸 수 있는 것이다. 마패는 암행어사의 신분증 혹은 상징처럼 알려져 있지만 여타 관리들도 필요에 따라 마패를 사용했다.

1454년 홍천현에 연봉역과 천감역이 있었다고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을 남겼다. ‘역이 두 개다. 연봉과 천감이다. 驛二 連峯, 泉甘.’

연봉역은 홍천읍 연봉리에 있던 역이다. 천감역은 두촌면 역내리(驛內里)에 있던 역이다. ‘역내리’라는 마을 지명이 역이 있었던 지역임을 짐작케 한다. 1899년 편찬된 『홍천군읍지』에 역내리 마을 지명이 없는 것으로 보아 1900년대 들어서 새로 생긴 지명인 듯하다. 역내리는 1941년 편찬된 『강원도지』에 비로소 등장한다.

연봉역과 천감역은 한양에서 인제로 가는 길에 있던 역이다. 지금의 44번 국도다. 연봉역에서 서쪽으로 신당고개 너머 횡성 백동역(白冬驛)이 있었고, 천감역에서 동쪽으로 건이치(建伊峙) 너머 인제 노마역(奴馬驛)이 있었다. 또한 5번 국도를 따라 연봉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횡성 창봉역(蒼峯驛)과 북쪽으로 춘천 원창역(原昌驛)이 있었다. 백동역, 노마역, 창봉역, 원창역은 『대동여지도』에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역에 대한 위치를 적었다. 거기에 원(院)에 대한 기록을 더했다. 원은 관리에게 제공되는 숙소를 말한다.

‘연봉역은 현의 남쪽 5리에 있다. 천감역은 현의 동쪽 60리에 있다. 승도원은 현의 남쪽 42리에 있다. 장생원은 현의 북쪽 30리에 있다. 양덕원은 현의 서쪽 30리에 있다. 추가. 오배원 은 현의 남쪽 32리에 있다. 驛院 連峯驛 在縣南五里. 泉甘驛 在縣東六十里. 勝道院 在縣南四十二里. 長生院 在縣业三十里. 陽德院 在縣西三十里. 【新增】 於背院 在縣南三十二里.’

남북으로 승도원, 장생원이 있었고, 서쪽으로 양덕원이 있었다고 적었다. 저본(底本)이었던 『동국여지승람』에 없던 오배원을 추가해 기록했다. 양덕원은 남면 양덕원리에 있었음을 지명으로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승도원, 장생원의 위치 기록이 혼란스럽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홍천현의 경계 기록과 비교해보면 의아함이 남는다.

‘홍천현 동쪽 인제현과의 경계까지 72리에 이른다. 남쪽 횡성현과의 경계까지 34리에 이른다. 서쪽 경기 지평현 경계까지 37리에 이른다. 북쪽 춘천부 경계까지 22리에 이른다. 洪川縣. 東至麟蹄縣界七十二里. 南至橫城縣界三十四里. 西至京畿砥平縣界三十七里. 北至春川府界二十二里. 距京都二百四十二里.’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홍천현 역원이었던 천감역과 연봉역, 양덕원에 대한 기록

횡성현 경계까지 남쪽 34리에 불과한데 승도원의 위치는 남쪽 42리에 있다고 적었다. 장생원 또한 춘천부 경계까지 22리에 불과한데 장생원이 북쪽 30리에 있다고 적었다. 승도원과 장생원이 어느 현 소속이었는지는 춘천현지와 횡성현지를 함께 봐야 풀릴 수수께끼다.

『여지도서』에서는 역봉역과 천감역의 규모에 대해 자세히 적었고, 새롭게 지은 천감원(泉甘院)을 추가했다.

‘연봉역은 관문으로부터 남쪽 5리에 있다. 큰 말 1마리, 타는 말 1마리, 짐 싣는 말 1마리가 있다. 관리자가 4명, 남자 노비가 11명, 여자 노비가 5명이다. 천감역은 관문으로부터 동북쪽으로 50리에 있다. 큰 말 1마리, 짐 싣는 말 1마리가 있다. 관리자가 8명, 남자 노비가 11명, 여자 노비가 3명이다. 천감원을 3칸으로 새로 지었다. 連峯驛 自官門南距五里. 大馬一匹, 騎馬一匹, 卜馬一匹. 吏四人, 奴十一名, 婢五名. 泉甘驛 自官門東北間距五十里. 大馬一匹, 卜馬一匹. 史八人, 奴十一名, 婢三名. 泉甘院 三間新建.’

말은 연봉역이, 관리 인원은 천감역이 더 많았다. 천감원을 새롭게 지어 천감역이 숙소의 역할을 더했다. 관리자는 인(人)으로, 노비는 명(名)으로 표기하는 것에서 조선시대 신분제 사회를 엿볼 수 있다.

『대동지지』에서는 천감역의 옛 이름이 감천이고, 춘천 보안역에서 강릉 운교역에 이르는 길에 2개의 역이 더 있다고 적었다.

‘연봉역은 남쪽 5리에 있다. 천감역의 옛 이름은 감천이다. 동북쪽 60리에 있다. 오른쪽 보안도에 속해 있는 2개의 역이 있다, 連峯驛 南五里. 泉甘驛 古名甘泉 東北六十里. 右二驛 屬保安道.’

나머지 홍천읍지의 역원에 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홍천현 관문으로부터 천감역까지의 거리를 동북쪽 50리 혹은 60리로 읍지마다 다르게 적었다.

글 백승호(벌력 콘텐츠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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