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홍천의 금석문이야기 ⑬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홍천의 금석문이야기 ⑬
영귀미면 덕치리 수타사 승탑군내 홍우당대사 부도와 부도비
서곡당대선사 승탑과 사리탑비, 수타사 법당계석 중수기
좌운리 영세불망비, 삼현리 신현설 도로창선기념비 소개
  • 조원섭 기자
  • 승인 2021.07.09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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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열두 번째에는 “노래를 부르며 아름다운 곳으로 돌아 온다” 라는 뜻의 영귀미면의 덕치리 수타사 보물 제11-3호 동종 주종기문과 수타사 중수기 현판에 대하여 소개하였고 금번 열세 번째에는 영서지역의 천년고찰 수타사 승탑군내의 홍우당대사 부도와 부도비(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5호), 서곡당대선사 승탑 및 사리탑비, 수타사 법당계석 중수기, 기타 승탑 및 비, 좌운리 영세불망비, 삼현리 신현설 도로창선기념비에 대하여 소개하기로 한다.

영귀면은 홍천군의 가운데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149.64㎢로 군의 8.2%를 차지하고 있으며, 행정관할은 법정 11개리, 행정 14개리로 인구는 2,000여 세대 약 3,800여 명이다.

영귀미면이라는 명칭은 조선조대의 각종 지리지 및 홍천현읍지에 詠歸美面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지도 (1750-1768년)에만 永歸美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홍천군 소재지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동면(東面)으로 개칭되었다가 2021년 6월 1일부로 영귀미 면민들의 청원으로 “ 노래를 부르며 아름다운 곳으로 돌아온다” 라는 詠歸美面으로 104년만에 돌아왔다.

면사무소는 1910년 초대면장이 임명될 때 좌운리에 있다가 동면으로 개칭되는 1917년에 속초리 현 동화중학교 자리로 이전하였다가 현 위치로 자리잡게 되었다.

영귀면에는 오음산(五音山)과 공작산(孔雀山)이 있고, 조선조대의 각종 지리지 및 홍천현읍지에 빠지지 않고 기록되어 있는 덕치리의 천년고찰 수타사(壽陀寺)가 있다.

홍천군 유적분포지도에는 223개의 홍천군유적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 영귀면의 56개(24%)의 유적이 분포되어 있다. 유적의 내용을 보면 수타사의 유적을 포함하여 서낭당, 효자각 / 열녀각, 보호수, 한말의병 격전지 / 3.1운동 유적지, 선사시대 매장유물 신고지, 청동시대 고인돌, 대미산성 / 오성산성지, 신봉리 / 오음산 폐사지 등 다양한 종류로 이루어져 있다.

홍천군 영귀미면 덕치리 수타사입구 오른쪽 소나무숲에는 승탑군이 자리잡고 있다. 지금부터 1,500여년 전 708년 원효대사에 의하여 창건되었다는 역사에 걸맞게 여러 고승들의 승탑이 있는데 그 중에도 강원도문화재자료 제15호인 홍우당부도(紅藕堂浮屠)와 사리탑비, 서곡대선사 승탑(瑞谷大禪師 僧塔)과 사리탑비이다.

그 외에도 법당계석중수기비, 청송당대사탑, 기허당대연사탑, 유화당대사묘위지탑, 중봉당대사탑,홍파대사탑 등이 있고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은 8각원당형승탑 1기, 석종형승탑 1기, 8각원당형승탑 기단부 1기, 석비 1기가 있다.

※ 승려의 무덤, 승탑은 수행이 높았던 스님을 부처와 같은 대우를 해서 입적하면 다비 후 스님의 사리를 모신 곳을 승탑(僧塔)이라고 하며 승탑이라는 생소한 명칭보다는 부도(浮屠)라는 명칭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부도는 부도(浮圖), 부두(浮頭), 포도(蒲圖) 등으로도 표기하는데 원래는 불타와 같이 붓다를 음역한 것으로 솔도파, 즉 탑파의 의미로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홍우당부도는 땅 위로 드러난 네모난 바닥돌(지대석) 위에 3단 기단을 두고, 납작한 공 모양의 몸돌을 올린 뒤 지붕돌(옥개석)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 중 1단석의 옆면에는 선 무늬, 윗면에는 두겹의 연꽃잎이 새겨져 있다. 2단석은 모서리에 마디가 있는 작은 기둥을 새기고 면마다 직선 무늬를 뒀다.

3단석은 아래와 대칭되는 두툼한 연꽃잎을 조각하여 장식했다. 지붕돌은 모서리선이 두툼하게 표현되어 있고 귀퉁이가 위로 솟아 있다.꼭대기는 낮은 받침돌위에 공과 꽃봉오리 모양의 돌을 차례로 놓아 장식했다. 바닥돌 외에는 대부분 6각 양식이라서 조선시대의 부도로 추정된다.

※ 홍우당 선천(紅藕堂 善天)

1611(광해군 3)~1689(숙종 15). 조선 후기의 승려(僧侶)로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선천(善天)은 법명(法名)이며 법호(法號)는 홍우(紅藕), 또는 홍우당(紅藕堂)이다. 16세에 경기도 양평(楊平) 용문산 용문사(龍門山 龍門寺)196)로 출가하여 설명(雪明)의 제자가 되었다.

그 뒤 강원도 홍천 공작산(孔雀山; 87m) 수타사(壽陀寺)197)에 가서 향봉(香峰)의 지도 아래 선(禪)과 불경(佛經)을 공부하였고, 남몰래 염불에 전념하여 염불삼매(念佛三昧)198)를 이루었다. 79세에 입적하여 다비(茶毘)하자 정골(頂骨)이 나왔으므로 이를 수타사 북쪽 바위굴에 안치하였다. 이듬해 그 정골을 한 곳에 봉안하고 기도하자, 은빛 사리(舍利) 2과가 나왔으므로 수타사와 용문사에 각각 봉안하였다.

수타사 경내에는 조선 광해군대 선천(善天)스님의 승탑(僧塔)부도(浮屠)인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5호로 지정된 홍우당(紅藕堂) 부도가 있다.

선천스님의 승탑 비문은 스님의 출생과 공부 이력에 대한 언급과 찬(撰)한 제자 정원(淨源) 스님의 애통한 마음을 담고 있다.

* 참고문헌 : 홍천군지

※ 상봉 정원(霜峰 淨源)

1627(인조 5)∼1709(숙종 35). 조선 후기의 승려. 성은 김씨(金氏). 법호(法號)는 상봉(霜峯). 평안도 영변 출신으로 아버지는 계선(係先)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일찍이 홍천 동면 공작산(孔雀山; 87m) 수타사 선천(善天)스님에게 머리를 깍고 계(戒)를 받고 청심(淸諗)과 추형(秋馨)에게서 경(經)과 논(論)을 배우고, 30세에 의심(義諶)의 법맥(法脈)을 이었다.

해인사(海印寺)에서 강주(講主)로 있을 때 ≪열반경(涅槃經)≫ 30여 부에 토를 달았고, 희양산 봉암사(鳳巖寺)에 있을 때 ≪도서(都序)≫와 ≪절요(節要)≫의 과문(科文)을 지었다.

특히, ≪화엄경(華嚴經)≫에 정통하여 4과목(科目 : 경문의 대의를 판정하는 要目) 중 전하지 않는 3과목을 지었는데, 뒤에 당본(唐本)과 대조하니 틀림없었다고 한다.

洪川縣東孔雀山水墮寺事蹟이 필사본181)으로 무진(戊辰, 168) 8월삭(八月朔)  유신축(惟辛丑)  풍담문인(楓潭182)門人)  묘각등계철옹사문(妙覺登階鐵瓮沙門)  상봉정원술(霜峰淨源述) 하였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龍門山)에서 나이 82세, 법랍 64세로 입적하였다. 화장하여 영골(靈骨) 및 영주(靈珠) 1쌍과 사리 두 개를 얻어 대구 동화사(桐華寺)와 청주 보살사(菩薩寺), 지평 용문사(龍門寺), 예천 용문사에 부도를 세웠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의눌(義訥)・제의(諦義)・보청(寶淸)・두옥(斗玉)・홍제(弘濟)・현신(玄信)・각초(覺初)・설징(雪澄)・묵령(默靈)・옥준(玉俊)・상능(尙能) 등이 있다.

* 참고문헌 : 홍천군지

수타사 부도군내에 있다. 서곡당대선사 사리탑비 오른쪽에 세워져 있는데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으나 마모가 심하여 글씨를 알아보기 힘든 상태이다.

크기는 비신이 100㎝(높이) × 59㎝(너비) × 19㎝(두께)이고 대좌는 92㎝(가로) × 60㎝(세로) × 20㎝(높이)이다. 비문은 전면에 새겨져 있는데 강희(康熙)49년(1710년)4월에 세워졌다.

* 참고문헌 : 홍천군의 전통문화(한림대학 아시아문화연구소 / 1987)

현재 영귀미면사무소가 있는 속초리에서 노천리를 지나 장승재를 넘어가면 좌운1리가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아름다운 좌운저수지가 보이고 곧 좌운1리에 다다른다.

좌운1리는 양지바르고 산이 병풍처럼 둘려 쳐진 아늑하고 제법 넓은 경작지를 가진 마을로 주민들도 많은 편이다.

속초초등학교 좌운분교장도 있고 생활하기 좋은 편이다.

버스종점슈퍼 근처에는 영귀미면 초대 면장이었던 『魯岩 許章煥선생』 추모비가 있고 그 건너편에는 얼마전에 새로이 건립한 좌운리 의용소방대가 있는데 그 앞에 조그마한 석비가 자리하고 있다.

이 비는 얼마 전까지 속초리 영귀미면사무소앞 화단에 있었는데 원래 위치인 좌운리로 옮겼다고 했다. 누구의 비인지 궁금하여 면관계자, 리장에게 확인한 결과 초대 영귀미면장이었던 노암 허정환선생 선정비라고 한다.

『노암 허정환선생』은 1857년 12월16일 좌운리에서 태어나 1894년 동학혁명때 좌운리에서 동학군과 관군사이에 큰 전투가 벌어질 뻔 했는데 노암선생이 같은 조선사람들끼리 싸움을 해서 되겠냐고 관군을 달래어 홍천으로 내 보내고 동학군에게는 소를 잡고 식량도 주었다고 하며 1907년 군대가 해산되어 전국에서 의병활동이 한창이었을 때 속초리에서 민긍호 의병장과 같이 손잡고 싸우며 군자금도 대다가 일본군에 체포되어 총살형까지 받았으나 선생의 능란한 언변으로 풀려 났다고 한다.

1901년 8월29일 일제의 침략으로 한일합방이 되어 각 면마다 면장을 임명할 때 일본의 회유와 협박에 못 이겨 초대 면장이 되어 1917년 10월1일 영귀미면을 동면으로 개칭하고 속초리로 면사무를 이전할 때 내 놓고 1917년 이후에는 가재를 정리하여 육영사업과 가난구제에 힘썼다고 한다.

 

2020년도에 영귀미면사무소앞에 있던 비를 좌운리로 이전설치 하였는데 어떤 이유로 비의 앞 / 뒷면을 바꾸어 설치하였을까?

영세불망비라고 각자된 부분이 앞면이고 광무10년이라고 건립년도를 각자한 부분이 뒷면인데 왜 바꾸었을까, 잘 몰라서라고 지역관계자는 증언하는데 고민해야 할 것 부분이다.

영귀미면 삼현리 마을회관을 지나 오른쪽 소로 산기슭에 보면 개석 (蓋石)으로 꾸며진 비석이 보인다.

소화(昭和)(1935년)10년 10월에 건립되었고 비문을 보면 신공현설도로창선기념비(申公鉉卨道路刱繕紀念碑)라고 새기었고 삼현방량일동(三峴方良一同)으로 한 것으로 보아 경사가 심한 삼현리와 방량리간 도로를 고치는데 기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 열네 번째에는 조선조대에는 검의산면, 금물산면으로 불리었던 남면의 명덕초등학교내 선정비군과 월천리 구장 지형심영세불망기념비에 대하여 소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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