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峯山祭(팔봉산제), 400년이 아닌 600여 년을 이어온 전통문화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행사가 취소됐지만 홍천은 매년 팔봉산 당산제를 지낸다. 한국 무속홍천군지부와 팔봉산 당산제 추진위원회가 공동 주관하고 홍천문화재단이 후원한다.

2019년 팔봉산 당산제의 현수막에 걸린 문구에는 ‘한 해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400여 년을 이어온 전통민속문화 팔봉산 당산제’라고 적혀 있다. ‘400여 년을 이어온 전통민속문화’ 문구를 붉은 글씨로 선조 때(1567~1608)인 1590년 경부터 팔봉산 당산제를 지내왔다고 강조한다.

『세종실록』 46권 세종 11년(1429년) 11월 11일에 예조에서 세종대왕에게 홍천 팔봉산에서 제를 지낼 것을 건의하고 윤허를 받는다. <br>
『세종실록』 46권 세종 11년(1429년) 11월 11일에 예조에서 세종대왕에게 홍천 팔봉산에서 제를 지낼 것을 건의하고 윤허를 받는다.

정말 그럴까?

봄, 가을로 지내는 팔봉산제는 세종(1418~1450) 때부터 있었다. 팔봉산제는 『세종실록지리지. 1454)』에 실릴 만큼 홍천의 큰 행사였다. 『세종실록지리지』 홍천 편을 살펴보면 ‘진산은 석화산이다. 현의 북쪽에 있다. 팔봉산은 현의 서쪽에 있다. 봄, 가을로 관에서 제를 지냈다. 鎭山 石花 在縣北. 八峯山 在縣西 春秋 其官行祭.’ 『세종실록지리지』 실릴 정도면 규모가 제법 있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후 『신증동국여지승람 1530년』, 『동국여지지 1656년』, 『관동읍지 1871년』, 『화산현지 1874년 ~ 1875』, 『홍천현 읍지 1990년 ~ 1992년 추정』에도 『세종실록지리지』와 같은 ‘팔봉산사. 봄, 가을로 우리 현에서 제를 지낸다. 八峯山祠 本縣春秋致祭’는 기록이 남아있다.

팔봉산제에도 역사의 아픔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강원도지 1941년』에 그 아픔을 고스란히 적었다. ‘팔봉산사는 팔봉산에 있다. 봄 가을로 제를 지냈다. 지금은 폐했다. 八峯山祠 在八峯山 春秋致祭 今幷廢.’ 일본 제국주의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이 팔봉산제까지 막아선 것이다.

해방 이후 주민들이 팔봉산제를 다시 살려냈다. 정확한 시기를 특정하지 못하지만 어느 해부터인지 삼신당과 칠성당을 짓고 자연스레 제를 올렸다. 씨름판이 열릴 정도로 규모가 상당했다고 주민들은 기억한다. 비용은 팔봉 1리 주민들이 정성미를 걷어 마련했다. 팔봉산제를 주관하던 당 지킴이 조 보살이 2005년 무렵 팔봉리가 아닌 어유포리로 이사하면서 맥이 끊겼다.

『세종실록』 76권 세종 19년(1437년) 3월 13일 홍천 팔봉산제 위폐 ‘八峯山大王之神’ 중 대왕(大王)을 뺄 것을 세종대왕께 건의하고 윤허를 받는다.

그렇게 팔봉산제를 지내지 않고 12년이 흘렀다. 2017년 팔봉산 당산제 추진위원회가 구성이 되고, 한국무속종 홍천군지부가 홍천문화재단 후원을 받아 다시금 팔봉산 당산제를 부활시켜 오늘에 이르게 됐다.

언제부터 팔봉산제를 지냈을까? 정확하게는 1429년 11월 11일 예조에서 세종에게 건의하고, 세종은 예조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중략... 원컨대, 이제부터 산천의 기암(奇巖)과 용혈(龍穴)과 사사(寺社) 등 영험한 곳에 제실(祭室)과 위판(位版)을 설치하고, 매양 4중월의 길일(吉日)에 사자(使者)를 보내어 예를 행하게 하소서.’ 하니, 명하시어 ‘이를 논의하라. 禮曹啓 : ...中略... 願自今訪問山川奇巖龍穴寺社等靈驗處, 設祭室及位版, 每四仲吉日, 遣使行禮. 命議之.’ 하셨다.‘

『세종실록』 46권 세종 11년(1429년) 11월 11일의 기록이다. 이어 변계량이 홍천 팔봉산을 건의한다.

“변계량이 아뢰기를 ...중략...영암 월출산, 광주 무등산, 병로지 용당, 용담 웅진분소, 제주 한라산, 강원도 원주 거슬갑산, 홍천 팔봉산, 이천 덕진명소... 중략... 그곳입니다. 卞季良以爲 ...中略...‘ 靈巖 月出山, 光州 無等山, 幷老只龍,、龍潭 熊津噴所, 濟州 漢拏山, 江原道 原州 琚瑟岬山, 洪川 八峯山, 伊川 德津溟所...中略...從之.’하니 그대로 따랐다.”

4중월은 한식(寒食), 단오(端午), 추석(秋夕), 동지(冬至) 등의 명절이 들어있는 음력 2월, 5월, 8월, 11월을 말한다. 그 중 길한 날에 제를 지냈다.

팔봉산제는 『세종실록지리지 1454)』에 실릴 만큼 홍천의 큰 행사였다.

팔봉산에서 제를 지냈다는 구체적인 기록도 『세종실록』에 남아있다. 『세종실록』 76권 세종 19년(1437년) 3월 13일 기록이다.

“홍천현의 팔봉산은 사묘의 위판에 ‘팔봉산 대왕지신’이라고 쓰여있는데 청하건데, ‘대왕’ 두 글자는 삭제하고자 합니다. 또한 사묘가 산 위에 있어서 대단히 험하여 오르내리기가 어려우니 청하 건데, 땅을 가려서 단을 설치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 중략 ...’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중략... 洪川縣 八峯山祠廟位版, 書八峯山大王之神, 請削大王二字. 且祠廟在山上極險, 上下勢難, 請擇地設壇. ... 중략... 上從之. ...중략...”

위판은 위폐다. 팔봉산제의 위폐 글씨는 ‘八峯山大王之神’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처음 건의를 한 1429년을 기준으로 하면 592년 전이다. 어명이니 바로 다음 해부터 팔봉산제를 지냈다고 미루어 짐작해보면 591년 전이다. 대략 6백 년 전의 일이다.

역사를 억지로 늘려서는 안 된다. 하지만 굳이 있는 역사를 축소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세종대왕이 직접 허락하신 팔봉산제다. 다음 팔봉산 당산제에서는 ‘600년 전통’이라는 문구를 당당히 써도 된다.

팔봉산제는 ‘400여 년을 이어온 전통민속문화 팔봉산 당산제’가 아닌 세종대왕 때부터 이어온 600년 전통민속문화다.

홍천읍지 이야기 글을 마치며...2021년 1월 첫주에 시작해 오늘까지 스물여섯 번에 걸쳐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홍천읍지 이야기’를 연재했습니다. 정확히 반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14종의 홍천읍지를 비교 분석하면서 쓰다 보니 놓치는 부분도 많았고, 아쉬운 부분도 제법 됩니다.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홍천읍지 이야기’ 연재를 마칩니다. 좀 더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고, 깊게 고민해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글 백승호(벌력 콘텐츠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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