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면서까지 농사짓기 싫다고 지겹다고 진저리난다고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거라고 노래하며 사십여 년간 술 달고 살다 벽에 기댄 아버지 눈빛 기괴하다 대접에 막걸리 따라 입에 대준다 꿀꺽꿀꺽 게걸스럽게 들이키신다 그에게 술은 밥이다 사시나무 떨듯 온몸 떨며 시도 때도 없이 밥을 마신다 조석으로 방을 정리한다 지팡이 닿을 거리에 요강 담배 재떨이 라이터 물주전자 수건 등을 놓는다 아버지는 나를 한 번도 안아준 적이 없다 헛개나무 열매가 간에 좋다는 말을 전해들은 어머니는 가을이면 산을 탔다 그 열매 달인 물 먹으면 술이 다 헛것이라는 말 사실이었는지 거무죽죽한 얼굴색 원래대로 돌아왔다 죽자 살자 산 타던 어머니 어디서 전해 들었는지 화전 농법으로 비탈밭 일궈 열매를 뿌렸다 이듬해 봄 무성한 잡초 속에서 대여섯 개 싹을 찾아냈다 지팡이로 벽을 두드리면 소리의 강약에 따라 목마르다 배고프다 요강 찼다 등의 말뜻 용하게 알아듣던 어머니 아버지 기력 살려놓으신 뒤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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