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본문영역

북방면 하화계리 백이 고인돌

정탄(町畽) 조원섭의 향토문화 보고서⑦

2018. 12. 15 by 더뉴스24

북방면의 하화계리 백이 고인돌군은 백이 구석기유물이 발견 곳에서 남쪽으로 약 20m 떨어진 곳의 군부대 안에 위치하고 있다. 고인돌이 위치한 지점에서 남쪽으로는 하화계리의 넓은 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홍천강이 보인다. 현재 백이 고인돌군에는 총 5기의 고인돌(추정포함)이 남아 있으나 마을에서 고인돌군을 ‘칠성바위’로 부르는 것을 보아 원래는 7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4기는 부대 내에, 1기(추정)는 부대밖 민묘 옆에 있으며 2기는 건물을 지으면서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군 가운데에 연고가 없는 1기의 민묘가 위치해 있으며 솟을묘 전설이 전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이 비석은 부대근무 부사관이 수년 전 솟을 묘 전설을 듣고 돌을 구해 붓글씨로 써 세웠다고 증언하였으며 지금은 글씨가 퇴색되어있음)

고인돌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면서 명칭을 부여하여 가장 남쪽 고인돌을 1호, 가장 북쪽 고인돌을 4호로 명명하였다.

하화계리 백이 고인돌

1호 고인돌은 네모꼴형태의 고인돌로 크기는 253cm×207cm×44cm이며 암질은 편마암이며 장축은 거의 동-서방향이다.

2호 고인돌은 1호 고인돌에서 북동쪽으로 약 9m 60c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크기는 152cm×144cm×45cm이며 암질은 편마암이며 장축은 북서-남동방향이다.

3호 고인돌은 2호 고인돌에서 북서쪽으로 4m 80c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크기는 294cm×204cm×87cm이다. 암질은 편마암이며 덮개돌의 형태는 네모꼴에 가깝다. 장축은 북서-남동방향이다.

4호 고인돌은 3호 고인돌에서 북서쪽으로 약 9m 50c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크기는 188cm×163cm×52cm이다. 암질은 화강암이며 덮개돌의 형태는 거의 정방형에 가깝다. 장축은 북서 – 남동방향이다.

5호 고인돌(추정)은 1호 고인돌 뒤 부대 담장밖에 민묘 옆 왼쪽 3m에 위치하고 있으며 2017년 9월 훼손된 3기를 추적 중 홍천군 향토사연구회와 부대 근무중인 부사관(솟을묘 전설비 세운 부사관)에 의하여 발견되었으며 1호 고인돌에서 남쪽으로 12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크기는 140cm×90cm×30cm이며 거의 묻혀 있다. 암질은 화강암이며 장축은 북 – 남 방향에 가깝다.

1996년 홍천군의 역사와 문화유적 책자 발간 당시에는 능평리 고인돌로 소개 되었으나 행정구역상 하화계리 백이마을에 속한다. 고인돌 유적지에 군부대가 위치해 있어 지금까지 고인돌이 존재하고 있는 점은 다행스럽지만 고인돌주변 부대 건물이 사용되지 않고 있어, 향후 미사용 건물이 철훼 될 경우 고인돌이 훼손될 우려가 있으므로 이에 대한 보존대책은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 솟을묘 전설 : 백이(栢里)라는 마을에는 조선조 초의 것으로 보이는 분묘가 있는데, 분상을 소가 밟으면 다음날에 우묵했던 소 발자국이 다시 솟아올라 자국이 없어진다고 하여 ‘솟을묘’ 라고 한다. 이 신비한 묘는 영험이 있어 아들 낳기를 원하는 부인이 금초를 하면 득남을 하고 , 노처녀 총각이 금초를 하면 성혼이 된다고 하며, 남 먼저 금초를 하고 소원을 빌면 바라는 일이 성취됐다고 하여 다투어 묘소를 돌보고 벌초를 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그 명당을 차지할 목적으로 묘 앞에 세운 비석과 석물을 앞에 있는 못에다 넣어 버렸다고 전하며 그 후로는 전혀 영험스러움은 거짓말처럼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하화계리 소단리 고인돌

유적의 위치는 행정구역상으로 홍천군 북방면 하화계 2리에 해당되며 자연부락 명칭은 소단리다. 홍천강의 하천작용 즉 홍수기의 범람으로 형성된 사질층적 대지는 비옥하여 현재 밭으로 경작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화랑교육대도 위치하고 있다. 하이트 교를 건너가기 전 좌측 강을 따라 길게 펼쳐진 길이 600m. 너비 150-200m 정도의 경작지 전부가 유적으로 생각된다.

이곳에서는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 토기편과 뗀돌도끼, 청동기시대의 구멍무늬 토기편, 골아가리 토기편, 붉은 간토기편, 간돌도끼, 반달모양돌칼, 간돌화살촉, 간돌검, 원반형 석기, 갈돌, 토제 그물추, 초기 철기시대의 경질무문토기편 등의 유물이 집중적으로 발견되었으며, 지표 채집되는 유물 양상으로 보아 신석기, 청동기, 초기 철기시대의 대규모 취락이 형성되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1991년에 하화계리 569-1번지 전에서 발견된 남북으로 10m 정도의 세모꼴로 분포되어 있던 4기의 고인돌(107cm×145cm×52-84cm, 234cm×168cm× 58-80cm, 144cm×98cm×40-56cm, 194cm×150cm×30cm내외)은 청동기시대의 고인돌로 1990년도 중앙고속도로 건설예정지역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시 원 위치에서 강가둔덕 밑으로 옮겨진 것으로 확인하였다. 1997년 추가 조사결과 고인돌 4기는 1996년 범람 예방을 위한 제방공사 시 모두 강둑 속에 묻혔음을 확인하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