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촌면 물걸리 동창마을 척야산 바위벼랑 아래로 흐르는 용호강에 널브러진 벼락바위 조각들이 거북같이 물위로 등을 내민 암반위에는 햇빛 고른 날이면 자라가족들이 기어 올라와서 한가롭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가 사람에게 들키면 슬그머니 강물로 잠수한다.

지난날에는 늘 보던 그림이었으나 몰지각한 사람들이 잠수하여 잡아가는 바람에 멸종되어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었는데 최근에 자주 이들이 눈에 띄어서 지나가는 길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한글고대소설인 《별주부전(鼈主簿傳), 《토생원전(兎生員傳)》,으로 전해지고 있는 이 자라 이야기는 조선 영조 ·정조 시대에 형성된 작품으로, 판소리 《수궁가(水宮歌)》를 소설화한 것이다. 옛날부터 전하는 고구려의 설화(說話)인 《귀토지설(龜兎之說)》에 재미있고 우스운 익살을 가미한 내용으로 한글이 생기자 정착된 의인소설(擬人小說)에 나오는 주인공이 자라다.

바다의 용왕(龍王)인 광리왕(廣理王)이 병들어 고생할 때 도인이 나타나 영약(靈藥)인 토끼의 간(肝)을 구해서 먹으면 낳을 수 있다하자 의원인 자라(별주부)가 자원하여 토끼의 그림을 가지고 육지로 나와서 토끼를 꾀어 등에 업고 수궁(水宮)으로 돌아오던 중 내막을 알게 된 토끼가 용왕에게 기지로써 “간을 볕에 말리려고 꺼내 놓고 왔으니 갔다 오겠다”고 속이고 다시 자라를 타고 육지에 도착하자 “세상에 간을 빼어놓고 다니는 놈이 어디 있느냐”며 산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자라가 서식하고 있는 이곳은 홍천설화에 전해지는 벼락바위가 있는 곳이다. 바위벼랑으로 이어지는 산에는 저녁마다 호랑이가 나타나서 포효하며 마을을 지켜주었다고 하여 용호대 라하며 구메바위는 바로 용호대 벼랑길에 있는데 전에는 이 바위에 큰 굴이 있어서 구멍바위라는 뜻으로 부르던 이름이다.

바닥에서 한 자 높이에 넓은 구멍이 나 있는데 이 구멍 안에 들어가면 자리 한 장을 펴놓을 정도로 넓은 반석 방이 있어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면 마을 사람들이 숨어서 피난하던 곳이기도 하다.

이 바위굴속에서 수백 년 묵은 구렁이가 용이 되어 강을 따라 서석 하다 용두안 쪽을 향하여 승천하였다고 한다. 구메바위는 마치 여러 개의 기둥을 세운 듯 바위기둥이 겹겹이 세워져 있으며 이 벼랑길은 겨우 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외길이었다.

이 구메바위 동굴에 살던 구렁이가 용이 되어 나간 다음에는 커다란 지네괴물이 나타났다. 머리는 하나인데 다리가 수없이 달린 괴상한 괴물은 자주 사람을 헤치고, 따로는 강가에 매어놓은 소를 잡아먹기도 했다. 급기야 마을 사람들은 괴물이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고 있으니, 천신께 제를 올리기로 했다. 천신의 힘을 빌려 괴물을 퇴치하자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백일기도를 드리기로 하고, 밤이고 낮이고 기도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먹장같이 깜깜해 지고, 이어서 천둥번개가 밤새도록 천지를 뒤흔들었다. 갑자기 닥친 변괴에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꼬박 밤을 지새웠는데, 아침이 밝아오면서 사방은 조용해지자 마을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 둘러보았는데 공포의 구메바위는 벼락을 맞아 산산이 강바닥으로 날아가고 그 위에 산더미 같은 괴물이 널브러져 있었다고 하며, 그 후로 사람들은 이 곳을 벼락바위라고 불렀다.

또한 이곳에는 농경문화에 기본인 보를 막고 암벽을 깎아서 수로를 만들어 동창들을 옥토로 만들었다. 이 보가 강원도 기념물 제65호. 물걸리의 6만7000여평에 물을 관개하는 수로다. 보는 길이 4㎞나 되는 이 도수로는 약 200m 정도가 옛날에 축조한 바위암벽을 깎아서 만들었는데 이것이 동창보수로(東倉洑水路)이며, 바위의 암벽에는 보주 김군보(金君甫), 등의 음각명문이 있다.

김군보는 1752년(영조 28)에 태어나 장년기에 이곳으로 낙향하여 개인의 자력으로 농경지를 개간하고, 바위를 깎아 수로를 만들어 동창들을 옥토로 만들었으니 농경문화에 개척자이며 보수로는 약 2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의 어려운 공사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지금도 이용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봄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보를 개수하고 보의 유실이 없는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산천신과 지신에게 제를 지내고 있다.

한때는 도로건설을 하면서 변형시킨 이 농경문화에 역사적 보물인 보가 훼손 되는 것을 막고 보존하기 위하여 출향하였던 동창보와 보수로를 건설한 김군보와 동창기미만세운동을 주도한 김덕원의사의 후손이기도 한 김창묵 옹이 고향으로 내려와서 강바닥을 돋우고 보의 원형을 복원 보존하고, 남강로를 개설하였으며, 그의 전 재산과 반평생을 바쳐 척야산에 역사문화수목원을 조성하여 위대한민족정기의 터전을 만들어 놓았다.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는데 이 역사적 흔적위에 설화로 이어지는 흔적까지 살려 자라가 서식하기까지 한다.

옛날 옛적 별주부전이 얘기되고 벼락바위의 설화에 지금은 자라가 일광욕을 하는 이곳은 동학군의 활약자취가 있고 4.3독립만세의 3000여 함성이 있었던 이모든 것을 아울러 새긴 척야산문화수목원이다.

옛날에서 지금까지 그리고 아주 먼 앞날까지 민족정기를 발현하며 이어가야할 이곳에 아름다운 자연을 보존하고 이어지기 위하여 자라를 잡아가는 몰지각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보존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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