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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비 된 똥 다시 먹거리 키우던 시절시집살이하던 어머니거적때기 젖히고 허리 굽혀 들어가근심 풀고 나오던 뒷간처럼해탈은 아니어도 새처럼 가볍게몸과 마음 비우고 나오던 해우소근심 한 덩어리 철퍼덕 바닥에 떨어진다저 근심은 몸보다 먼저 마음이 키워낸 것오늘 나는 해우소에 앉아욕망과 근심 사이의 함수관계를 개관한다방구석에 처박혀 피운 게으름과술 퍼먹으며 함부로 다룬 몸이근심을 낳고 키워왔던 것그러나 놀라워라, 근심이밭으로 돌아가 풋것들의 밥이 된다는 사실해우소에 앉아 근심을 비우면마음이 가벼워지고근심은 밭으로 가서 땅에 근력을 키운다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오주원 기자
2023.01.2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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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리에서 북방면 송학정 가려면허공 딛고 뚜벅뚜벅 홍천강을 건너야 한다거기에는 바람, 빗, 눈, 그늘, 소리, 먼지, 밤,벌레, 곤충, 동물, 조류, 낮, 별, 달발 그리고 구름발들이제 맘대로 쉬어가는 송학정이 있다아침의 강은 햇귀처럼 막 씻은 민낯이고한낮의 강은 국수 가락처럼 풀어진 낯이고이른 저녁의 강은 수묵화처럼 고요의 낯이다물이 강을 돌보고 달빛이 강을 파고든다신선과 영감이 통하듯 우려내어양수 없이 꺽꺽 토해내는 청푸른 예언들허공 같은 지면에 시 한 수 흘려 쓰고 지운다천 개의 하늘에 천 개의 눈동자 풀어 놓고겨울밤처럼 차갑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오주원 기자
2023.01.0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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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로 들어온 꽃다발을 해체한다끽해야 하루밖에 계속되지 않을 꽃묶음 풀어헤쳐바닥에 내려놓자 꽃내음 하나둘 팔라당팔라당공중으로 길 내며 나를 내려다본다허리 잘린 아픔 참아온 시름의 꽃들화병 속에서도 사흘밖에 살아나지 못할 꽃들을 위해수명 연장제 한 봉지 털어 넣는다고수버들 사이사이 노란 프리지어와 붉은 장미구색 맞추어 꽂고 꽃병 둘레에 안개꽃 꽂는다밖에는 눈이 몰아치거나 말거나거실에는 이내 그윽한 봄 향기 가득하다며칠간 눈부시게 아름답고 매운 향취 뿜어주던지극히 순박한 꽃들의 안식처이레 되던 날 아침 속을 텅 비우고 말았다무슨 불만이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2.12.2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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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항엔 아직 달동네가 있다네바다에 나간 가장보다도달이 먼저 찾아와마당을 환히 비추는 동네한낮은 무덤처럼 고요하다가도밤에 들수록 분주하게 소란이 반짝이는 마을비탈에 꼬막들처럼다닥다닥 붙어있는 키 작은 집들이가까스로 몸 비틀어 만든 골목에 들어서면비린 냄새의 그물이 온몸을 감아온다네며칠 유숙하며 정 붙이다 보면나도 어느새 풍경의 하나가 되는 마을파도소리에 깨어나파도소리 덮고 잠드는 마을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2.12.21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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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젖어 망나니 되어 돌아온 남편만정이 떨어져 내치고 싶다가도다음날 아침 나 아니면 누가 저 속 풀어줄까살 맞대고 살아온 알량한 정 하나로술국 끓여주는 날통북어 봉당 댓돌에 올려놓고한바탕 요란하게 욕지거리 퍼부어대며방망이로 신나게 두들겨 팬다퍼지고 일그러진 몸통쫙쫙 찢어 냄비에 넣어 우리고 또 우려낸다혹취 내뿜는 납빛 얼굴로설설 끓는 북엇국덜덜 떨며 떠먹는 손 바라보노라면괜스레 콧등 시려 오면서평생 남의 편만 들어온 남편슬그머니 내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2.12.15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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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봄황량한 논바닥에 농부보다 먼저 깨어나 자리 잡고생명을 잉태하는,겨우내 얼었던 논바닥에 축구장이라도 만들듯 무리지어파릇파릇 줄기 밀어 올리는,못자리 끝나면막대처럼 생긴 연한 갈색 꽃밥 올려봄바람이 재촉한 짝짓기로 열매 만들어논갈이할 때를 기다리는,허기진 배 움켜쥐고 보릿고개 넘던 시절열매 훑어다가 풀떼기 쑤게 하여 허기 달래게 해주고부종 수두 복통 설사에 뿌리 없이 달여 먹게 하고뱀에 물리면 열매 찧어 바르게 해주던,논바닥 갈아엎으면줄기와 이파리는 흙 속에 뒤엉켜 풋거름 되어주고씨앗들은 땅에 묻혀 다음 해를 기다리는,굶어 죽어도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2.11.3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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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식당에 들러시장기 채우려 바코드를 긁는다식사 때마다 마주치는 영양사 아가씨는나의 일상을 검색기처럼 꿰뚫고 있다오늘은 한식옹기 뚝배기에 나온 우거지탕간밤에 숙취도 풀 겸 해서뚝배기째로 먹어 치우니뱃살 주름 펴지는 소리 요란하다위장이 고장 났다는 처방전에 따라약 한 봉지 털어 넣고로열젤리 질겅질겅 씹는 퇴근길에집 근처 슈퍼마켓에 들러출근할 때 아내가 건네준 쪽지를 꺼내 든다비누 칫솔 시금치 달래 마늘 풋고추……빠짐없이 챙긴 다음 계산대에서잊지 않고 바코드를 긁는다아내의 칭찬을 뒤로한 채잠자리에 눕기 위해나는 본능처럼 아내의 가슴에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2.11.1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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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내 땡볕에서 자랐다고투덜대던 콩도리깨질로 붙잡아 들여 키질하고가마솥에 찜질되레 몸이 불어 거드름 피우는 그놈을절구에 넣고 사정없이 찧어틀에 넣고 꾹꾹 밟아 만든 메줏덩이짚으로 묶고 고리 만들어보란 듯이 추녀 밑에 걸어두었다가봄볕 좋은 날 골라왕소금 물 채운 항아리 속에 감금검푸른 속내 우러날 때까지 삭히고 삭혀보리밥과 버무려서이번엔 뒤뜰 장독대로 유배잦은 눈비 속에서도햇살 들이는 일 거르지 않으시던어머님의 정성 잊지 않고누렇게 철들던 된장묵힐수록 제맛으로 익어가는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2.11.0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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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지동시장 생닭집에 가면발가벗은 닭들이 좌판 위에 제멋대로 놓여있다닭 손질하던 아저씨 흥에 겨워발라당 뒤집어져 있는 것들털 뽑힐 때 반항한 놈들이고,무릎 꿇고 있는 것들죽음값 흥정하는 이에게목만큼은 자르지 말아 달라 애원한 놈들이고,털썩 주저앉아 있는 것들다산으로 미주알 빠진 놈들이라고,한바탕 사설을 늘어놓는다어떤 이는 뒤집어진 놈 달라 하고어떤 이는 무릎 꿇은 놈 달라는데주저앉아 있는 놈 달라는 이 하나도 없다어떤 이는 닭볶음탕거리라 하고어떤 이는 백숙거리라 하며하나같이 육덕한 놈 달라 한다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2.10.2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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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나도 남도 잊고찻잔도 내려놓고좋고 나쁨 분별없이차 맛에 드는 중이라네나는 지금어제도 내일도 잊고세월도 내려놓고온다 간다 분별없이차 맛에 드는 중이라네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2.10.1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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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기술 후문 먹자빌딩 입구색 바랜 플라스틱 의자 하나 있다도대체 몇 번이나 가출했기에쇠사슬에 묶이고 자물쇠에 물렸을까빌딩을 빠져나온 취객들이심심풀이 삼아 발로 걷어차고 지나가도표정 한번 바꿀 줄 모르는 사내권태에 찌든 얼굴로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도엉덩이만 올려놓으면반가운 듯 삐걱거리는 사내밤이 깊어도 그에게는 안식의 자유가 없다언젠가는 달아날 날 있겠지 하면서도태연함을 가장한 채 무뚝뚝하게 서서꼼짝달싹하지 않는 다 늙은 사내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2.10.0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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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수압으로 납작해진 몸통두 눈 오른쪽으로 밀려나고 입마저 작아진,대형 고무다라이 속에서 숨죽여 사는 동안|검은 사자(使者) 찾아올 때마다눈 깜박이지 않고 죽음 똑바로 쳐다보며 숨 막히던 불안느닷없이 끌려 나와소쿠리에 담기자마자 눈 튀어나온,도마 위 살기등등한 칼 보고퍼덕이며 아가미 벌룽거려보지만대가리 한 방 얻어맞고꽁지 대가리 잘리고 속까지 내어준,몸통, 벗지 않을 수 없는탈피기 위에 얹혀 단번에 홀라당 벗겨진,평생 수산시장에 좌판 펼쳐놓고절퍼덕 절퍼덕 밑바닥 기며 살아온 고단한 할머니고스란히 담겨있는 하얀 접시 위에서꼬리 흔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2.09.1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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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퍼렇게 동트는 울진군 죽변항자꾸 투덜대는 속 달래주려맑은 곰치탕집 찾아간다통발 작업에서 생포되었다는 놈들 죄다 도토리 키재기다추하게 생겼어도 숙취 해소 다이어트 피부미용퇴행성관절염 예방에 좋다고 너스레 떠는 곰치 아지매반눈 뜨고 한바탕 입 찢는다문디 자슥 우찌 이리 힘이 좋으꼬가만 있끄라 흐믈흐믈 엥가이 띠비지고 지랄떠네거무튀튀한 수컷 요놈이 노란빛 나는 암컷보다 훨씬 맛있다며넓적하게 썬 무 콩나물 양파 넣고팔팔 끓을 때 곰치를 뚝뚝 잘라 넣는다파 넣고 조선간장으로 간 맞춘다백옥처럼 흰 살[肉] 파고들어 깊은 맛 우려내어 맛좋다는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2.09.0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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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냉동실에서 꺼낸 가자미 한 꾸러미 패대기치며 사만 오천 원은 받아야 쓰겠다 한다 멀리서 왔으니 깎아달라는 말 떨어지기 무섭게 수박씨 뱉듯 툭툭 내뱉는다 제기랄 가자미 한 꾸러미 생산하는데 얼메나 고생하는지 알기나 해여 한숨 팍팍 내쉬는 노파 명함 건네주며 떼먹든지 말든지 어서 가지고 가란다 꽁지와 대가리 잘라버리고 냉동실에 넣어두란다 한 끼 먹으리만치씩 꺼내서 무수 납작납작하게 썰어 깔고 가자미 얹은 뒤에 잘박잘박 물 붓고 양념장 켜켜이 발라 자작자작 지지란다 미라네 할미 생각나거든 값일랑 명함에 적힌 계좌번호로 이체 시키란다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2.08.2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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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을 때는 아가미에 뚜껑이 없어항상 입을 크게 벌렁거리는 곰치얇은 비늘 대신 두꺼운 피부이빨 날카롭고 성질 광폭한 놈내장 훑어내고 껍질 벗겨 덕장에 매달아 말린다햇살에 녹아 진물이 흐르고밤 추위에 꽁꽁 얼려버리기 한 달간 하고 나면육질이 쫄깃쫄깃해지는 놈얼굴 작고 몸통 미끈하게 빠져 슈퍼모델나이롱 대구라고 불리는 놈냉동 보관해두었다가 여름철에 먹으면 더 맛깔스러운 놈적당한 크기로 툭툭 잘라 물에 헹궈 넣고묽은 간장에 고춧가루 청양고추 파 통깨 설탕참기름 섞어 만든 양념장 켜켜이 발라놓고방아잎이나 미나리 고명으로 올리고 찐다온 집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2.08.1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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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변 오일장이다 담장 호박꽃이 환하게 시들어가는 한낮 무럭무럭 늙고 있는 할매 셋이서 장마당 평상에 둘러앉아 찐빵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고 있다 김숙남 할매는 열셋에, 최진구 할매는 열넷에, 주필석 할매는 열둘에 한입 덜려 시집왔단다 하나같이 뽀얗고 팽팽할 때 신랑 먼저 보낸 늙은이 그동안 누가 호명이나 하여 주었던가 자식 같은 남정네일망정 이름 불러주니 늙어서 웬 호강인가 북면 고목 삼리에 산다는 왕 할매한테 술을 권한다 여태껏 입에도 대지 않던 술인데 사내가 주니 받아먹네 갈 때가 되어서야 팔자 고치네 팔자 고쳐 질투하는 할매 손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2.08.1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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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서 배냇짓 하는 꽃눈에 한소끔 쉬어가는 봄볕고울사 향토의 꽃 민들레 애기똥풀 꽃마리 부처꽃굼틀굼틀 움질움질 자궁벽 두드리고 있다잉태하는 생성의 아픔별꽃들 속삭임 촉촉한 이슬 머금고봉긋봉긋 솟아나는 노랑이 하양이 분홍이핵폭발하듯 화들짝 문 연 요염한 자태향취 가득 그윽한 미소부동산 투자 없고 연금보험 종신보험 들지 않는 그들은비를 맞았어도 마스카라 립스틱 덧칠하지 않고영양제를 먹거나 링거를 맞지 않고주름 생겨도 보톡스 주사 맞지 않는 그들은봄 동안 몸 벌겋게 발기시켜 지나가는 족족 발목 잡고자기만의 색깔과 향기 만드는 그들은길섶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2.08.0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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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안개 자욱한 뜰에노랑나비 몇 마리달맞이 이파리에 살갑게 붙어있었다곰곰 들여다보니간밤에 갓 태어난 꽃들이었다투명한 빛깔에 꽃의 얼이 얼비치었다저 여린 얼이 아니었다면더욱 빈한했을 내 여름의 뜰어느 날 꽃들은 앙상한 줄기에딸랑 씨만 남긴 채 자취를 감추었다마지막 꽃대를 흔들어주었다한 걸음 한 걸음 시나브로 다가온 숫가을내 속들까지 파고들었다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2.07.27 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