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열네 번째에는 홍천군 남면의 명덕초등학교내의 선정비군 지금은 유실된 군수 김영진 영세불망철비를 비롯하여 4기와 월천구장 지형심 영세불망비를 소개했었다.이번 열다섯 번째에는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홍천의 금석문을 마무리 짓는 북방면의 역전평리 김정두씨 기념비와 홍천군의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내면 창촌2리 기념비군을 소개하려 한다.북방면은 홍천군의 북서쪽에 위치한다. 고려시대(1143년/인종21)부터 홍천현의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북방면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 1393년(태조2년)에 화계면(花溪面)으로 개칭되었다가 다시 북방면으
지난 열세 번째에는 보물 두점을 비롯하여 11점의 문화재를 간직하며 1,500여년을 지켜온 영서지방의 대표적 고찰 영귀미면 덕치리의 수타사 승탑군과 좌운리 영세불망비, 삼현리의 신현설 도로창선기념비를 소개했었다.이번 열네 번째에는 남면의 명덕초등학교내 선정비군, 월천구장 지형심 영세불망기념비를 소개하려한다.남면은 홍천군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경기도 양평군과 인접하여 홍천의 관문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각종 지리지에는 금물산의 별칭이었던 구의산(駒倚山)면, 검의산(劍倚山)면, 이류우(二流羽)면, 삼류우(三流羽)면으로 불리었
지난 열두 번째에는 “노래를 부르며 아름다운 곳으로 돌아 온다” 라는 뜻의 영귀미면의 덕치리 수타사 보물 제11-3호 동종 주종기문과 수타사 중수기 현판에 대하여 소개하였고 금번 열세 번째에는 영서지역의 천년고찰 수타사 승탑군내의 홍우당대사 부도와 부도비(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5호), 서곡당대선사 승탑 및 사리탑비, 수타사 법당계석 중수기, 기타 승탑 및 비, 좌운리 영세불망비, 삼현리 신현설 도로창선기념비에 대하여 소개하기로 한다.영귀면은 홍천군의 가운데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149.64㎢로 군의 8.2%를 차지하고 있으
지난번 열한 번째에는 홍천군 동쪽의 서석면의 금석문인 현감 민태호 선정비, 동창보 수로 암각명(강원도기념물 제65호), 대한민국만세 암각명 등에 대하여 소개했었다. 이번 열두 번째에는 104년만에 일제강점기의 흔적에서 정감있는 원래의 면 명칭으로 돌아온 영귀미면의 천년고찰 수타사 동종(銅鐘) 주종명문(鑄鐘銘文) (보물 제11-3호), 수타사 중수기 현판(重修記懸板)를 소개하기로 한다.영귀면은 홍천군의 가운데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149.64㎢로 군의 8.2%를 차지하고 있으며, 법정 11개리, 행정 14개리로 인구는 2,0
지난 열 번째에는 애국충열의 고장 내촌면의 두 번째로 향기나는 서곡마을의 백우산자락 쌍계사지 금석문과 덕탄여울의 암각명을 소개하였었다. 이번 열한 번째에는 서석면의 금석문에 대하여 소개하기로 한다.서석면은 홍천군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225.27㎢(군의 12.4%)이며 내면에 이어 두 번째로 넓은 면적이다. 법정 8개 리 / 행정 14개 리로 인구는 3,800여 명이다. 고려시대에는 노릉군 주우면이라고 하였다고 전하여 지나 조선시대 17세기부터의 각종 문헌과 고지도에는 서석면(瑞石面)으로 표기되어 있어 홍천에서 유일하게
지난 아홉 번째에서는 홍천군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독립만세운동의 함성과 팔열사 정신이 깃들어 있는 물걸리 동창마을의 기미만세공원과 6,25 한국전쟁 전 / 후에 대한청년단, 국민방위군, 지하결사대 등의 조직원으로 조국을 수호하다가 장렬히 산화하신 영령들을 모시는 호국용사 추모비 / 구국지사 추모비가 있는 애국충렬의 고장 내촌면의 금석문 중 1차로 물걸리 홍천현감 선정비 5기, 기미만세운동 순국 팔열사 기념비, 내촌면사무소내 면장 이완익기념비, 내촌초등학교 교정내 이성옥여사 기념비에 대하여 소개했었다.이번 열 번째에는 내촌면사
지난 여덟 번째에는 홍천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화촌면 송정리의 송정구장 김교하 영세불망비, 홍천의 북동쪽의 두촌면 철정리 기념비군, 자은리 군수 김시명 송덕비, 괘석리의 박구장원약기념비를 소개하였었다. 이번 아홉 번째, 열번째에는 내촌면의 금석문을 2회에 걸쳐 소개하기로 한다.내촌면은 홍천군의 1읍 9면의 하나로 홍천군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750년도의 조선지도에는 乃村面으로, 1757년도의 여지도서에는 奈村面으로, 1776년의 조선팔도지도에는 內村面으로, 19세기 전반의 광여도에는 금촌면(禁村面)으로, 1830년도 이후의 김
지난 일곱번째까지는 필자의 정리한 74개 금석문 가운데 24기가 있는 홍천읍을 소개하였고 금번 여덟번째에는 홍천군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화촌면과 동북쪽의 두촌면의 금석문에 대하여 소개하기로 한다.화촌면은 홍천군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면적은 약 211㎢(군의 11.6%)이며 인구는 4,700여명이다. 법정 11개리, 행정 18개리를 관할한다.1413년(태종13년)에 처음으로 화촌(化村)면으로 명명된 이래 化村 또는 花村으로 불리다가 1895년(고종32년) 홍천 9개면 중 하나가 되었고일제강점기 1917년 행정구역 개편시 화촌(化
지난 여섯 번째까지는 홍천읍 금석문 24기중 연봉리선정비군 16기, 홍천박물관내의 홍천현감 원만춘 청백선정비 그리고 홍천향교 입구의 3기〔하마비, 군수 이낙응기념비, 홍천향교 보수기념비(추정)〕에 대하여 소개하였고 금번 일곱번째에는 홍천읍의 마지막으로 삼마치의 마애선정비 2기, 장전평의 옥류동천 암각명, 홍천화산공립심상소학교정문을 소개하기로 한다. 홍천읍 삼마치리 75번지 옛 국도변(주유소 뒤쪽) 벌통 밑 자연석에는 2기의 마애선정비가 위치하고 있다. 마애비(磨崖碑)라 함은 자연석에 글 또는 그림을 새겨 놓은 것을 말하는데 무슨 이
지난회(다섯번째)까지 홍천읍의 금석문 24점 중 연봉리 무궁화공원 회전교차로 옆의 홍천의 선정비군 16기에 대하여 소개하였다.이 선정비 16기는 원래 홍천현의 관아거리인 (구)홍천군청(현재는 홍천미술관) 부근의 도로옆에 있던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것으로 최초 17기 중 현감 원만춘청백선정비(철비)는 홍천향토사료관(현재는 홍천박물관)으로 옮겨 전시중이다.또, 군수 이병석 기념비는 현감 김창일 선정비로 대체되어 세워져 있으며 홍ㅊ너읍 선정비군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어 군민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것도 사실이다.16기는 강원도
지금까지 네번에 걸쳐서 홍천의 금석문을 소개하면서 필자가 조사 / 정리하였던 75점의 금석문중 홍천읍 연봉리 무궁화공원 회전교차로 옆의 강원도관찰사 / 홍천현감 / 군수선정비 10점을 소개하였다.10점중에는 강원도관찰사(겸순찰사) 선정비 2기(정시성 / 윤성대), 현감 이세백 / 최일 / 이한 / 남지구(2기) / 윤홍거 / 이장오 / 윤형은 이었는데 그중에 도윤혁파 공로의 선정비 2기, 역대 현감중 현감 임기를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암행어사보고 / 혐파(파직) / 하급직위 전보 3기가 포함되었다.이번 다섯번째에는 16점중 아직 소
지난 3회째 연재에서는 홍천읍 금석문중 연봉리 무궁화공원옆 도로가에 2열로 세워져 있는 16개의 강원도 관찰사(순찰사) / 홍천현감 선정비 일부를 소개하였다.겸순찰사 정시성 애민선정비는 홍천과 정선, 경북울진(조선시대에는 강원도 강릉부 울진현) 등 3개소에 설치되었는데 건립연도는 동일한 1682년(숙종8년)임에도 홍천의 선정비는 명나라 연호인 숭정(崇禎)을, 정선의 선정비는 청나라 연호인 강희(康熙)를 사용하였으며 홍천의 선정비는 조선선정불망비군총록(김동복)에 의하면 내촌면에 있다고 기록되어 홍천읍으로 이전 설치된것으로 추정된다.현
홍천군에서의 홍천읍은 군소재지이면서 중앙에 위치하고 행정, 교육, 문화생활의 중심지이다. 면적은 107㎢이며 홍천군 전체의 5.9%를 차지하며 행정구역은 법정13개리, 행종 48개리이며 인구는 3만5천여명으로 전체인구의 50%이다.고려 현종대(1018년)에는 화산현 현내면(縣內面) 이었다가 조선시대 1413년 종6품 현감을 파견하면서 홍천관아가 위치하였으며, 1895년(고종32년)에 홍천현이 홍천군으로 되면서 현내면은 군내면(郡內面)으로 변경되고 일제강점기시대인 1917년 홍천군 홍천면으로 되었다가 1963년 홍천읍으로 승격되었다.
금석문은 금속(金屬)이나 돌[石]에 새긴 글씨, 또는 그림을 총칭하며 크게 금문과 석문으로 분류된다. 한층 넓은 의미로는 갑골문(甲骨文), 와전명(瓦塼銘), 토기명문(土器銘文), 금・은에 새긴 글, 목간(木簡) 등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홍천군의 금석문은 주로 석문(石文)이며, 시기도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것이 대부분이다.홍천군의 금석문조사는 세차례 조사된 것으로 판단되며 그 결과가 조사기관 결과보고서, 문화유적분포지도, 홍천군지로 기록되어 있다.첫번째 조사로 1986년 1월부터 8월까지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주관으로 주
필자는 홍천에 정주 한 지 2007년부터 14년째, 홍천향토사를 관심을 가진지도 8년이 되어간다. 2014년 홍천문화관광안내사를 공부하며 『이야기로 보는 홍천 제1편 금학산과 팔봉산, 한서 남궁억선생』을 홍천군 지원으로 발간하고, 2017년에는 홍천문화원 부설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분들과 홍천의 고인돌을 탐방하며 벌력문화 제31편에 『홍천의 고인돌』을 기고하였다.2019년에는 홍천미래전략연구회 홍천역사문화연구회원분들과 1년 동안 홍천역사문화에 대하여 서로 공부하는 기회를 가지며 그동안 탐방하며 자료를 수집하였던 것을 금번 겨울방학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