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깨달었으면 고치는 게 답이다.

작년 말, 교수협의회가 정한 사자성어가 과이불개(過而不改)였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세상풍조를 한마디로 꼬집고 풍자하는 말이다. 이것을 나와 무관한 딴 나라 세상을 구경하면서, 구름위에서 조롱하듯, 한 때 비웃는 말거리로만 흘려버린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진단이 있으면 처방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뜻에서 과거를 기반삼아 현재를 반성하면서 새롭게 출발하는 금년이 되었으면 한다.

잘못을 깨달었으면 고치는 게 답이다. 당장 결단하고 고친다면 가장 빠르고 바른길이다. 지금은 내게 남은 시간 중에서 가장 젊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과이불개’로 작년을 마감했다면, 이번에는 ‘과즉물탄개’로 금년을 시작하자.

과이불개’는 공자시대 군자의 수양덕목에만 국한될 수 없다, 또 특정 세력이나 특정 집단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오늘, 나의 삶에 해당되는 교훈이다.

공자는 그 말에 그치지 않고 ‘잘못을 했을 때는 그 즉시 고치는 일을 꺼리지 말라는 뜻으로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를 말한다. 실수 없고 과실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치는 사람, 깨닫기만 하고 그냥 뭉개는 사람, 깨닫지도 못하는 사람, 자신의 그림자를 남에게 투사 시키며 ‘내로남불’로 철가면을 쓴 채, 오히려 큰 소리 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지금 어디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을까? 혹시 ‘내로남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로남불‘은 위선과 억지감정과 도덕불감증의 끝판이다.

진짜 억울한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고마워해야 할 사람이 더 억울한 양 ‘피해자 코스프레’ 한다. 진짜 힘이 없으면 억울하다는 소리마저 할 수 없다. 진짜 절박한 사람은 당장 생존에 급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인간 보편의 양심이라는 특별한 감성만큼은 지켜져야 한다. 그런 기본적인 마음이 있어야만 ’과이불개‘를 넘어서 ’과즉물탄개‘에 이를 수 있고, 또 그래야 그동안 익숙해진 소탐대실의 길에서 빠져나와, 다시 살아나는 길로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늦었다고 깨달을 때가 나의 시간 중에서는 가장 빠른 기회다. 급하다고 해도 기본을 지키는 것이 가장 바른 길이다. 아무리 급해도 실을 바늘귀에 꿰지 않고 허리에 동여맨 상태로는 한 뜸의 바느질도 할 수 없는 것,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사실 아닌가?

잘못이 있으면 고치는 것을 꺼리지 말자(過則勿憚改).

지난해 ‘과이불개 인생’을 반전시킬 수 있는 이 ‘과즉물탄개’를 계묘년 새해에 나를 이끄는 나만의 화두로 삼아보는 것이 어떨까? 인생 전체로 볼 때 전화위복의 소중한 찬스가 될 것이 분명하다.

지금, 나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물어본다.

이러한 제안이 일말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거부감만 드는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그냥 그렇게 사는 수 밖에~, 그 길이 내게 정해진 운명의 길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지만, 미련한 사람은 변명하고 합리화함으로써 두 번 잘못을 저지른다. 그것이 습관(업)이 되면 두 번이 문제가 아니다. 돌이킬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평생 상실한 채, 자기 자신이 아닌, 껍데기, 즉 페르조나(가면)의 삶으로 마감할 수밖에 없다.

가면은 더 큰 가면으로만 덮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이상으로 어색한 말을 많이 해야만 한다. 그 뒤끝은 공허함 뿐인 데도 말이다. 공자는 허물을 저지르고 고치지 않는 것이 진짜 잘못이라고 했다. 그것이 過而不改 是謂過矣(과이불개 시위과의)다.

금년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예측불허의 험난한 길이요. 전무후무한 낯선 길일수도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러우전쟁’ 으로부터 촉발된 3고(고물가,고환율,고이자)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물가가 치솟는 상황속에서도 경기는 오히려 침체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설상가상으로 이제 끝나가는 줄로만 알았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과 미국 등지에서 신종변이(XBB)상태로 둔갑하여 다시 부활되는 양상이다. 남북간 군비경쟁과 오기의 대립은 우리 민족의 비극이지만 우리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한계에 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소망하는 시절이 언제 올지 예측불허의 세월이다. 아니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이 마당에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몰가치한 것들에 자신을 매몰시킬 것인가? 쓰나미는 몰려오는데 언제까지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묻지마 패싸움만 할 것인가?

내일 죽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을 만큼 마음에 빚을 지지 않고 있다면 훨씬 더 가볍고 부담 없는 수행의 길, 혹은 순례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가면 없이 진실한 내 모습이 보인다면, 허무한 싸움에서 돌이킬 수 있지 않을까요?

시간은 내가 선택할 수 없지만, 방향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이다. 나의 방향이 옳다면, 하늘도 내게 참으로 좋은 ‘카이로스’(Kairos) 시간을 배려해 줄 것으로 믿는다.

이 대목에서, 재작년 사자성어는 어떤 것이었는지 가슴에 새겨본다.

묘서동처(猫鼠同處)-도둑 잡을 사람이 도둑과 한 패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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