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입술에서 30초가 내 가슴에 30년

요즘 정치권에서 회자되고 있는 막말은 ‘말 폭탄’이 아니라 ‘말 쓰레기’에 가깝습니다.

남에게 말로 상처주어도 괜찮은 치외법권(治外法權)의 권한을 가진 사람은 이 지구행성 위에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검사가 피의자를 조사하는 중에 반말을 해도 요즘은 “당신은 싸라기 밥만 먹었느냐” “왜 반말 하느냐?”고 반박하는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세상이 달라 졌습니다.

글로 쓴 것은 출판되기 전까지는 정정이 가능하지만 입으로 뱉어낸 말은 주워담을 수 없기에 더욱 더 신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적으로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그만큼 실수할 기회가 많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특히나 마이크를 잡고 다중에게 말을 하는 사람들은 의도하지 않은 말이 여러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경우가 너무도 많은 경우를 봅니다. 더 큰 문제는 자기가 언제 어떻게 치명적인 상처의 말을 했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입니다. 그런 말을 습관처럼 해 온 사람은 그것이 너무도 익숙하기 때문이지요.

저의 경우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황당한 말 기습공격에서 비롯된 억울한 아픔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참고 인내하며 덮었던 상처들이 어느 순간 다시 살아서 그 동안 어렵게 아물었던 아픔을 다시금 자극 하는 경우를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아마도 본인과 진솔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런 기억이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은 농담이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특히 농담이니 애드립(ad lib)을 이용해서라도 감정이나 사리사욕 의도가 섞여 있는 말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거지요.

그것이 심할 경우, 저의가 있는 즉흥적인 말을 하기위해 감춰진 목적으로 연설을 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거든요. 여기서 이야기하는 말의 표현 속에는 낱말이나 문장만이 아니라 특별히 노출되는 큰 소리와 성냄, 안색의 변화 등을 포함합니다. 말 자체보다도 그것이 더 크게, 더 빨리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실한 연설원고를 준비했다 할지라도 그 뜻이 왜곡된다는 이야기지요.

청중이, 말하는 사람에게 대해 너그럽거나, 존경하거나, 농담을 받아준다고 해서, 함부로 말해도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에 대한 신뢰를 급격히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그 동안 그가 말해오던 일관된 내용의 진실성이 단번에 사라지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옛날과 달리 논리나 조리 있는 말보다 거부감 없이 공감할 수 있는 진솔한 말이 비록 어눌하더라도 더 높이 평가되고 감명을 받습니다.

습관적으로 막말을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정치인이라면 우리 유권자는 이제 그의 이미지를 수정하게 될 것입니다. 유권자가 그 정도도 구분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이라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착각이니까요. 묻지 마 박수부대보다 중도층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정치인의 수준이라면 그에 대한 평가는 다음 투표에서 나타날 터이니까요

말은 습관이고 습관은 인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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