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이곳에 오셔서 자유를 느껴 보시니 어떠신가요? 그렇게 목숨을 걸만큼 자유의 가치가 있던 가요?” 김동건 아나운서의 질문이었다. “목숨을 열 개라도 걸만 합니다.”

11명의 가족을 이끌고 1987년 청징의대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으로 망명했던 김만철씨의 답변이 새롭게 기억된다. 자유의 소중함~!, 자유의지가 억압되지 않는 삶의 소중함~!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농도 짙은 메시지였다.

이제 곧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절기인 부활절을 맞아 자유의지의 가치를 조명해본다.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자유로운 생명활동의 극단적 단절인 죽음을 맞았다가 3일후의 부활한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가 부활절이다. 그리스도의 생명의 부활은 곧 모든 인류의 생명에 대한 자유의지의 부활이다.

태초에 세상을 만든 하나님은 왜 사람에게 에덴동산에 있는 각종 실과를 가리키면서, “요것, 요것, 요것만 먹어라~” 하지 않으시고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하고, 안 되는 것 한가지만 금지하셨을까?

“자유의지”는 신의 의도에 따라 생명에 내재된 DNA이다. 그러길래 타인의 자유와 충돌하거나 자기 죽는 줄 모르는 방종 같은 자유의지는 불가피하게 최소한으로 제한하지만, 그 외에는 최대한 자유의지(임의로~)를 허락하신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남의 자유의지를 내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임의로 묶는 일은 없을까? 자유의지를 심어준 신 마져도 함부로 꺾지 않으셨던, 그 소중한 가치~! 자유의지를 박탈 할 만큼 소중한 가치가 얼마나 있겠는가? 자유의 박탈은 몸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공갈, 협박, 궁박한 사정을 악용한 사기등은 정신의 자유의지를 함부로 꺾어버리는 대표적인 악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매일 매일 나 아닌 다른 존재의 생명을 먹고 살아간다. 저마다 예외 없이 “살려고 하는 생명의지”가 꺾여지고 제물이 된 각종 생명들이 우리 밥상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남의 생명의지를 꺾고, 그 생명을 먹고 사는 우리는 그 생명의 밥값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를 위해서 제물이 되어준 그 생명들에게 미안하지 않은 가치를 세상에 끼치면서 살아가야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살지 못한다면, 최소한 음식 쓰레기라도 적게 남겨 애매한 생명을 덜 죽이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먹지도 않고 버릴 거면서 사람을 잡아먹는 무모한 식인종의 행태나 무엇이 다를까 싶다.

다행히 필자인 나는 회사 현직에 있을 때, 한가지 잘 한다는 것이 있었다. 내가 먹은 밥그릇은 설거지하기가 최고란다. 먹을 만큼만 덜어 먹기에 절대로 음식쓰레기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란다. 이것은 내가 잘 해서가 아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자랑스런 습관이다. 돈 내고 사먹는 식당에서도 이 습관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니 이것은 나의 자랑거리가 절대 아니다. 당연한 것이 그냥 당연한 것이어야지, 자랑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소박한 마음의 표현이다.

부활의 절기에 맞춰 총선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유권자의 자유의지와 현명한 판단을 제한하는 가짜뉴스, 상대에 대한 증오를 유발시키는 선동, 내 사욕을 위해 남을 무고하는 몰염치와 이를 편승한 이권단체들의 묵시적 압력, 지역사회를 편가르고 추종하는 묻지마 투쟁세력들…… 이런 것들이 안정되고 평안한 상태에서 판단할 수 있는 백성들의 고유한 권리와 진정한 자유의지를 교란시키는 에덴동산 악마의 DNA아닌가 싶다.

내 자유의지의 DNA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내 스스로 자중하며 내 스스로 지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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