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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나들이 한번 할라치면 물부터 최소한 하루 굶어야 한다도심지에서 갑자기 용변 신호 오면 골 아프다 못해 하늘 누레지고 얼굴에 닭살 돋고 온몸 뒤트는 경련, 한곳으로 모아 꽉 훔켜잡고 두리번거리다 튀어나온 눈알 집어넣는 것 외에 아무 생각 없다거적때기 걷고 들어가 쪼그려 앉아있으면 햇살 스미고 구름 겹겹 지나가고 별들 수런거리고 국수 가닥 같은 비 들이치고 똥물 튀어도마음의 근심 시나브로 사라지는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2.01.2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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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태어날 때부터뱃속에 방을 지니고 있다뒤뚱뒤뚱 걸음마 시기가 지나면애집하기 시작하는가방은 여자의 길동무다없으면 손발이 잘리거나 벌거벗은 기분이다카메라 앞에서 임신한 배를 가리고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앉을 때 앞가리기로 쓰고때론 무기가 되어주는 가방브래지어 안쪽을 탐색할 수는 있어도손을 넣을 수 없는 비밀의 세계립스틱 거울 초콜릿 지갑 열쇠 볼펜 명함속옷 물티슈 생리대씹다 버린 껌 종이가 들어있는방, 한없이 대접을 받다가도때론 하찮게 취급되기도 한다지하철 식당 찻집 술집 공중화장실에서알 품은 암탉 자세로 놓여있다가 발에 채기도 하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2.01.19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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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을 때 살갗에 돋던 소름 날이 가면 잦아들 줄 알았다 병실마다 몸살 앓는 소리 요란하다 밤마다 갈고 나온 시퍼런 목낫 온종일 휘두르다 못해 늦은 밤까지 해대는 전화질 고목의 가지 팍팍 내려친다 검은 피 역류하다 뽑히기도 한다육 개월 이상 치료 요한다는 진단서 받는 순간 아내부터 생각날 줄 알았는데 육 개월 동안 징그럽게 눈깔 치켜뜨고 쪼아대며 노예보다 더 지독하게 지지고 볶던 만고 잡놈 직장 상사부터 생각난 것은 웬일일까야! 시벌로마施罰勞馬, 사람이 싫어지고 머리 터진다 잡귀에 홀려 잠 못 잔다 밤 아홉 시에 챙겨 먹는 약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2.01.1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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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로운 꽃 거둔 오월의 하늘은 티끌도 없다박새 찌르레기 꾀꼬리 참새 파랑새 솔새들 희희낙락사방팔방 분주해진 숲 속 합창으로 가득하다클럽에 소속된 가수 여럿 한바탕 축전 벌이듯,재잘재잘 수다 떠는 이파리들 휘파람 불며짝짓기하는 오월의 새들 꽃보다 아름답다왈칵 성욕이 그리워지고 희망의 노래 들려오는그런 숲에 들어 나체족으로 마냥 거닐고 싶다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2.01.0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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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다 말린 꽃 우려낸 차를 마신다은은한 향기가 스멀스멀 피어나는 작은 보랏빛 꽃차아직 추위 가시지 않은 길가등교하던 여학생 서넛 멈춰 서 있다진짜 이름 듣고 깜짝 놀라 키득 키득 웃고 있다열매 모양이 개불알 닮았다고재미있는 이름 붙여진 까닭에 사랑받는,아침에 태어나 저녁에 저버리는 하루살이 꽃가까이 다가서면 지린내 진동하는,둥글고 늘어진 촌스러운 모양이지만열매는 뾰족하며 깔끔해 귀족 불알이라 불리는,유난히 여자들 눈에만 잘 띄는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1.12.29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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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도 큰 언덕 위에서쉬고 있던 갈매기떼가썰물을 끌고 제부도로 건너간다물고기들이 앞다투어 달아나고매바위에 도착하자 길이 열리고사람들이 걸어 다닌다제부도 매바위에서한 시간 남짓 쉬고 있던 갈매기떼가밀물을 끌고 대부도로 건너온다큰 언덕에 도착하자 길이 사라지고수평선이 팽팽해지자어족들이 걸어 다닌다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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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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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변소 깊숙한 똥통에서구더기들이 꼼지락거리며 시를 쓰고 있다가파른 절벽 타고 오르다미끄러져 떨어지는 끈질긴 도전 끝에정상에 올라 파리가 되었어도똥둣간 떠나지 못하고 주위만 빙빙 돌다싱싱한 똥 즐겨 빨아먹는똥파리가 되었다나도 엄마 뱃속에서 나와무럭무럭 자라 큰사람 되겠다고용쓰며 열심 살았지만호미 놓으면 죽는다는 부모님 성화에화전 밭고랑 벅벅 긁으며 시를 캐며 살고 있다끈질긴 무기에 사로잡힌 한 생시 한 편 발표는커녕 밥만 축내는인간 똥파리가 되었다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1.12.1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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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년이늦바람나면 속곳 밑에 단다는 단추열려있든 닫혀있든짱짱하게 달려있든 느슨하게 달려있든반짇고리에 담겨있든길바닥에 떨어져있든 밟히든 묻히든생긴 대로 웃는다단추는구녕에 끼워주든 말든실 돌돌 감아 모강지 맨들어주든 말든실밥 풀리든 말든달았다 떼었다 하든 말든옷고름 대신 쓰든 말든생긴 대로 웃는다단추는성급하게 끼든 성급하게 빼든빡빡하든 헐렁하든비가 오든 눈이 오든 바람이 불든춥든 덥든생긴 대로 웃는다똥그랗게 웃고네모지게 웃고기다랗게 웃고볼록하게 웃고오목하게 웃고 알록달록하게 웃는다짜개 단추는 똑딱똑딱 웃고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1.12.0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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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터에 뿌리내린 밤나무가 있다 나이로 치면 족히 칠순을 넘었을 것이다 해마다 유월이면 진동하는 밤꽃 내로 지나는 여인들 콧구멍 실룩거린다 여섯 줄기 중 두 줄기가 말라죽었다 들떠있는 껍질 들추어보니 그 속엔 딱정벌레 풍뎅이 사슴벌레 등속 일가를 이뤄 바글바글 살고 있다 기신기신하면서도 이파리들보다 많은 밤송이 매달고 있다 추석 지나 양수 없이 사지 뒤틀어 핏물 든 알밤 울컥울컥 토해내며 지축을 흔들어댄다 그때마다 숲 속을 빠져나온 다람쥐들 몰려들고 마을의 개들이 짖는다 다산으로 수척해진 근골 바람 매 맞으면서도 나이테 하나 더 새겨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1.11.1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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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저고리 입고꽃방석에 앉아 있는네 모습이참으로 예쁘기도 하구나친구가 없는 거니갈 곳이 없는 거니나랑 친구하면 안 될까난 꽃 피워주고넌 중매쟁이 하고그렇게함께 살면 안 될까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1.11.0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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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소는 주름공장이다날마다 주름 만들어 판다여섯 식구 의식주다공부시키고 시집 장가보낸다주름 지우는 주인얼굴 주름 늘어간다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1.10.2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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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 하도 작아벌들 눈길 끌 수 있게토끼 귀처럼 한 장을 반으로 갈라 두 장처럼 보이게 한다꽃필 때는 위로 향해 피고씨앗 여물 때는 아래로 늘어뜨리고씨앗 떨어뜨릴 때는 고개 바짝 쳐든다신발 바닥 따위에 붙어 멀리 이동하기 위해돌기 가득 돋아 있는 씨앗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흔하디흔한 잡초다땅 위에도 별이 있다는 걸 사람들은 모른다작은 하얀 꽃에 눈길 주는 사람 없다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1.10.2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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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은 온통 초록의 시간이다이 계절에 피운 연초록빛 작은 꽃진초록 바다에 묻히게 된다빈약한 꽃 돋보이게몇몇 잎들 흰색으로 분장해꽃처럼 보이게 둘러싸고사랑 실현해줄 매개자를 부른다애틋한 그 정성에 화답하며멀리서 날아드는 벌과 나비들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1.10.1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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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살 잡수실 때까지막내 재롱에 장남 잊고 살던 당신은기저귀 차고서야며느리에게 젖을 물렸습니다꼬박 다섯 달째 누워 있던 당신은그만 못할 짓을 했구나,입 다문 지 사흘 되던 날 아침‘아이고 나 어떻게’마지막 소리치며 자지러졌습니다피부 노래지고가래 끓고손발 차가워지고허리 내려앉고눈 뒤집히고입 돌아가고기억의 줄기와 조각 그리고서걱거리던 지난날들까지산산이 바스러지던,죄 많은 세상이라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으시고그 저녁,붉게 토하는 노을 타고 가셨습니다그토록 날 미워했던 당신은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1.10.0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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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고 일어날 때마다입속에서 독한 시간의 냄새가 난다혓바닥 날름거릴 때마다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기겁하고 뒷걸음치는 그녀당신 몸의 기관들 죽어가고 있는 증거라며술 작작 마시란다치 간 칫솔질 정갈하게 해도사이사이 주검들 남아 있었는가 시체 냄새가 난다구더기 성찬 마치고 남은 찌꺼기왜, 하필 윗구멍을 선택한단 말인가너는 알고 있는 것이다죽음이 점점 가까워진다는 것을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1.09.2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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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송이처럼 피어난 연보라 등꽃 속으로호박벌 한 마리 붕붕거리며 다가와 기우뚱 착지할때, 등나무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아래 꽃잎 활짝 세워 발판 만들어준다이윽고 낮게 비행하며꽃의 계곡 속으로 파고드는 호박벌에게등나무는 꽃잎 속 수술 내밀어꽃가루가 골고루 몸에 묻게 해준다호박벌의 입구이자 출구인 꽃에서 호박벌 나오면가까운 미래에 등나무는 열매를 얻을 것이다등나무는 호박벌이 고맙다자신의 몸속에 쟁인 꿀을 기꺼이 내준다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1.09.2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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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잎 버려야꽃피우는 들풀묵은 가지 떨어뜨려야새잎 여는 나무번뇌와 망상뿌리째 밀어내버려라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1.09.15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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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확인서에 이렇게 기록했다 1992년 8월 4일 경기도 안산에서 출생 품종 영국산 요크셔테리어 이름 덤보* 보호자 안원찬 2007년 9월 16일 아침 6시 35분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 자택에서 총각 신분 노환으로 사망 똥오줌 못 가리고 말귀 알아듣지 못한다고 온갖 잔소리와 구박에 폭행까지 받았지 너는 / 시뻘건 전기인두에 꼬리가 잘리기도 하였지 너는 / 발정 난 네 눈빛 간절해도 끝끝내 모른 체했지 나는 / 사소한 잘못 저지를 때마다 벌방에 가두곤 했지 나는 / 명절이나 휴가철 집 비울 때마다 굶주려 지내야 했지 너는 덤보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1.09.0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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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상 모양으로잎을 땅 위에 바짝 붙인 채 겨울난다찬바람 견디기 위해 잎을 옆으로 펼친 채햇빛으로 보글보글 밥 지어내년 봄에 쓸 수 있도록 뿌리에 비축해두는 것이다겨우내 납작 엎드린 자세는수비가 아니라 공격을 위한 수단이다‘남보다 먼저 하는 것이 좋다’는 속담처럼라이벌 없는 시기에 꽃피워찾아오는 벌, 나비들 독차지한다겨울을 이용하는 지혜아, 기특하다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1.09.01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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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퉁불퉁한 형상에 까칠해 보이는 얼굴무럭무럭 여물어알싸한 향 뿜어 사방으로 뿌려댄다좀처럼 벌레를 타지 않는 그녀는성질 급한 사람에게 신맛 주고느긋한 사람에게 새콤달콤한 맛 주는쉽사리 마음 열지 않는 독한 여자다그녀의 낯을 탓하지 마라숨은, 새콤달콤한 맛 보여주는 뜨거운 존재다
시캐는 농부(시인 안원찬)
더뉴스24
2021.08.26 15:46